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ang Lee Oct 15. 2021

시집가도 되겠다는 말

칭찬인듯 한 이 말에 담긴 숨은 편견


"아휴, 얘 너는 이제 시집가도 되겠다~"


내가 요리를 손에 익히기 시작한 건 20대 후반에 접어들고 나서이다.  

자취야 이전부터 해왔지만 고시원이나 하숙집 등에서 지내면서는 요리를 할 수도 없었고 할 필요도 못 느꼈었다. 20대 후반에 처음으로 보증금 500만원을 마련해 혼자 사는 진짜 '자취방'을 얻고나서는 들뜬 마음에 인터넷을 보며 익힌 각종 요리법들을 익히기 시작했고, 우쭐한 마음에 틈만나면 내가 이런 것도 만들 줄 안다고 자랑을 하고 다니던 20대 후반. 그 때부터 종종 듣던 이 말, '시집가도 되겠다'.


처음에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몇 번 듣다보니 의문이 생기는거다. 요리를 좀 할 줄 알게 된 것이 왜 내가 결혼을 해도 되는 자격처럼 여겨지는 거지? 나는 아직 연애도 버거운데? 결혼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다른 누군가와 함께 살 수 있을 정도의 포용력이라던가 평생에 다신 안 올 운명적 상대같은게 아니던가? 하다못해 경제력이나 안정적 직업같은 현실적 조건이라면 또 모를까, 요리라니?


무언가를 해도 되겠다- 라는 것은 일종의 자격을 부여하며 칭찬을 하는 말이다. 공을 유난히 잘 차는 사람에게는 "야, 너는 축구선수 해도 되겠다" 라는 칭찬을 하고, 화초를 잘 기르는 사람에게는 "너는 꽃집 차려도 잘 하겠네" 라는 칭찬을 한다. 그 쪽에 재능이 있구나, 전문가가 되어서 그걸로 밥벌이를 해도 잘 하겠구나 하는 그런 칭찬. 그런데 그 맥락에서 봐서는 이 "시집가도 되겠다" 라는 문장이 더 이상해지는 것이다.


결혼을 한다는 것이 내 직업이 바뀌는 일이 아닐텐데, 어째서 어떤 재능과 자격이 필요한 듯 이런 칭찬을 하는 걸까? 이유는 단순하다. '여자'는 결혼을 하면 마땅히 요리 등 살림을 해서 남편을 만족시킬 의무가 있다는 구시대적 편견이 사회적으로 용인되기 때문. 그 사람의 직업이나 경제력과는 무관하게 여자라면 요리와 살림에 무지할 경우 "그래서 시집은 가겠니?" 하는 말이 나오는 이유도 같다. '여자'가 요리도 못해서 어쩌겠냐 하는 그런 비난.


남자인 친구들 중 요리에 취미가있어 제법 잘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이 친구는 '장가가도 되겠네' 소린 안 듣더라. "너는 무슨 남자애가 요리도 잘하니?" 혹은 "결혼하면 와이프한테 예쁨받겠네!"하는 칭찬들. 이 친구에게 요리를 잘 한단 것은 뜻밖일지는 몰라도 순수한 장점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그래도 칭찬은 칭찬이다. 저 말을 하는 우리 윗세대 사람들에게 나를 향한 악의같은 건 없을 것이다. 결혼할 자격을 얻어낸 나를 기특히 여겨 하는 칭찬이니 굳이 또 거기에 성차별적 의식이 숨어있다고 화를 낼 필요는 없다. 다만 이 이후의 세대에는 이런 말들이 전해지지 않도록 이 관습적 성차별의 존재를 인식을 하자, 뭐 그런 얘기다.   

작가의 이전글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