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치는 중

by wholemy

남들은

감정을 뱉어내기 위해 글을 쓴다고 하지만,

나는 감정을 외면하기 위해 글을 쓴다


한쪽 눈을 감고 언뜻 봐도

내 감정은

끝이 보이지 않는 깊은 바다처럼 느껴지니까


그 안에 슬픔이 얼마나 큰지

그 안에 미움이 어떤 모양인지

그 안에 가득 찬 절망이 어떠한지 들춰보는 게

너무 고통스러우니까


결국,

그 날카로운 감정들이

스스로를 다치게 만들 것 같아서


아니,

그 감정들을 다 톺아보고 난 후에

어떠한 희망도, 의지도, 힘도

남지 않을 것 같아서


그것도 아니면,

내가 모르는 저 밑바닥에 들러붙은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게 무서워서.


그래서 나는 열심히 도망치는 중이다


괜찮은 척,

별거 아닌 척,

잘 버티는 척


그렇게 하루하루

글자로 올린 모래성을 쌓으며,


혹은 하루하루 무너져 내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