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선으로 행복했던 우리

생일도에 가다

by 박현주

둘째 딸 생일을 맞아 '생일도'로 왔다.

올해 초, 청산도를 다녀오며 남편이 제안을 던졌었다.


"올 겨울, 효수 생일에 시간 되면 생일도 가자"

"진짜? 진짜? 거긴 어딘데?"

"전라도"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나는 방방 뛰었다. 눈 보고 날뛰는 강아지처럼 내가 더 설레었다. 나는 여행을 참 좋아한다. 가족과 함께하는 여행은 더더욱 애정 한다.


그리고 오늘, 신랑의 기약할 수 없던 약속이 지켜졌다.

중장비 하는 일을 가진 신랑이라 우린 계획된 여행보다 즉흥여행을 많이 다녔다.


올해 다녀온 섬만 해도 벌써 3군데나 된다. 그렇게 무작정, 무계획으로 방하나 예약 없이 다녔지만 알뜰하게, 재미나게 다녀왔다.

보길도에서 3 만원 주고 묵은 모텔도, 청산도의 아름다운 경치도, 제주도에서 먹은 콩나물국밥도 우리에겐 모든 게 완벽했다.


생일도에도 무작정 왔지만 방을 잘 골랐던 터라 숙소 밑에 식당도 있었다. 밥 먹고 이동할 필요 없이 바로 쉴 수 있다니 최고의 선택이었다.


차로 섬 한 바퀴를 돌고 학서암에 올랐다. 차로 갈 수 있다는 숙소 사장님 이야기를 듣고 출발했다.

역시나, 걸어갔더라면 내일쯤 도착했을 것만 같은 거리와 경사, 간간히 비포장이 나타나는 산길이었다.

어쨌거나 산 끝자락에 도착하니 아담한 절이 있었다. 우중충한 날씨 때문에 흐린 풍경이었지만 드넓은 바다와 봉긋 솟은 몇몇 섬들이 눈 안에 들어왔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날씨가 화창하면 저 멀리 제주도도 보인다 했다. 날씨가 도와주지 않아 조금 아쉬운 순간이었다.

학서암과 탑
학서암에서 바라보는 풍경

내려와 서성항을 마주한 곳에 생일송(소나무)과 포토존이 있대서 가보았다.

언덕에 올라 떠나는 배에게 인사도 하고, 가족사진도 찍고 잠시 관광객 모드로 즐겼다.

생일송&포토존


추위와 배고픔의 절정에 다다른 우리는 이른 저녁을 먹었다.

숙소 아래 뷔페집이 있었는데 우리 부부는 생선구이를 주문했고 아이들은 뷔페로 먹었다.

섬이라 해서 약소할 것 같다는 예상과 달리 음식이 다양했고 맛도 좋았다.


"닭볶음탕은 또 왜 이렇게 맛있는 건데, 나는 왜 이런 맛이 안 나노?"


고기 러버인 나는 닭부터 집어 들었는데 깜짝 놀랐다. 살 속에 고요히 잠식한 양념 맛이 씹을 때마다 내 혀를 춤추게 했다.

물기 있는 닭요리를 안 먹는 아들도 이것은 맛있다고 쪽쪽거리며 순식간에 집어삼켰다.


"와~이 집 맛집이네"

"탁월한 선택이었어"


신랑도, 아이들도 약간 격양된 목소리였다.

좀 전까지 치토스 한 봉지, 삼각김밥으로 출출한 배를 달래고 온 사람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같은 말을 되뇌었다.

생선구이는 시간이 좀 걸린댔는데, 다들 뷔페 접시를 한 그릇씩 클리어했을 때 생선구이가 나왔다.

부세구이와 전어구이

2인분을 주문했는데 커다란 접시 두 개가 나왔고 생선의 비주얼을 보고 감탄사도 못 뱉을 정도로 얼어버렸다.

푸짐하다 못해 접시가 넘칠 지경이었다.


"전어 뭔데, 와 이리 맛있노?"

"마이 무라"


생선의 살이란 살은 모조리 발라먹겠노라는 자세로 앉아 젓가락을 장전하고 생선을 뜯기 시작했다.

부세(부세조기)와 전어구이였는데 고등어만 먹는 아들도 맛있게 먹었다.

조기는 꽉 찬 살이 입안에 들어가자마자 부드럽게 녹아 없어지던 반면 전어구이는 짭조름함과 고소함이 뒤엉켜 젓가락질을 멈추지 않게 만들었다.


"전어 먹고 싶어서 생일도 또 오자고 할 것 같아"


마음의 소리가 나도 모르게 막 뱉어져 나왔다.

물론 전어 때문만은 아닐 거다. 생선을 주제로 가족과 함께 이야기하고 생선살을 발라주고, 잡아주고 했던 그 모든 순간들이 소중해서, 애틋해서일 테다.


서성항 앞 대형 생일 케이크 모형 앞에 서 있는 예비 중학생 딸을 보고 있으니 만감이 교차했다.

하나뿐인 소중한 딸♡

'언제 이만큼 큰 거지? 시간아, 제발 천천히 가주라'


시간에 발이 있다면 잠깐이라도 묶어두고 싶은 맘이 가득했다.

해준 것도 없는데, 착하고 밝게 그리고 건강하게 자라준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는 마음으로 생일도에서의 첫날밤을 마주한다.


"나를 딸 있는 엄마로 만들어 줘서 고맙고, 엄마로 자라게 해 줘서 고마워,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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