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하는 모든 순간이 여행이다

양산 황산공원에 가다

by 박현주

저녁식사에 반주(飯酒) 거하게 걸친 신랑이 밥을 먹자마자 산책을 가자했다. 그것도 양산의 황산공원이란다.

경주에서 양산까지 얼추 한 시간 거리이다. 술김인지 진심인지 알쏭달쏭했지만 가끔 식사 후 드라이브도 다녔으니 가자는 말에 토 달지 않고 운전대를 잡았다.


나는 개인적으로 운전을 좋아하기도 하고 옆좌석이나 뒷좌석에 앉으면 멀미를 하기 때문에 운전을 자처한다. 멀미의 고통이 싫어 피곤할지라도 운전대는 대부분 내가 잡는다.

게다가 신랑은 일 때문에 장거리운전을 많이 해왔던 터라 되도록이면 운전대를 잡지 못하게 한다. 나는 참 좋은 아내인듯하다. 하하하


양산으로 가는 길에 소변이 마렵다는 신랑을 졸음쉼터에 내려주니 볼일을 보고 나와 차 앞에서 댄스삼매경.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신랑이다. 그 모습을 본 딸은 괴성을 지른다.

"아빠 왜 저래~~"

"오늘 반주를 많이 드셨나 보다"

웃음을 선사한 신랑이 차에 오르고 우리는 다시 고속도로를 내달렸다.


얼마쯤 안 가서 신랑이 입을 뗐다.

"효수가 벌써 중학생이야?

"응"

"시간 참빠르네, 내가 너희를 키우면서 가장 후회되는 게 뭔지 알아? 아빠가 너희 크는 모습을 못 봤다는 거야 "


신랑의 말이 끝나자마자 차 안의 공기가 급작스레 무거워졌다.

나는 울음이 나오려는 걸 겨우 참았다. 눈물을 참기 위해 라디오에서 새어 나오는 소리에 집중하려고 애썼다.


신랑과 나는 주말부부로 14년 떨어져 살았다.

큰 아이가 태어난 지 50일이 되었을 때 나는 김천에, 신랑은 부산으로 일을 하러 갔다. 신랑이 부산에 다 와갈 때까지 나의 울음은 그쳐지지 않았다.

같이 밥 먹고, 같이 이야기하고, 같이 잠들고 싶었던 일상적인 일들조차 함께 할 수 없음이 속상했고 갓 태어난 신생아와 연고도 없는 김천에서 둘이서만 지낼 생각을 하니 앞이 캄캄했고, 무섭고 두려웠다.

내 몸도 아직 회복되지 않았는 데다가 혼자서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 하는 염려와 근심으로 마음이 무거웠다.

그러나 살려니 살아지더라. 그렇게 아이를 키워냈다.

그리고 아이가 돌이 되기 전 이곳 경주 시댁으로 들어오게 됐다.


그때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때만 해도 영상을 공유하는 게 쉽지 않았고 전화와 사진이 유일한 소통창구였기에 함께한 기억이나 추억이 많지 않았다.

나 또한 아이를 함께 키우며 이런저런 육아 이야기로 이야기꽃을 피우고 싶었다. 그러나 먹고사는 일이 우선이었으니 내 욕심만 챙길 수 없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던 그 시간들의 기억이 가슴을 저며왔다.

나약한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던 신랑이었기에 이런 이야기를 먼저 꺼낸다는 게 고마우면서도 함께 못한 그 시절이 야속하기도 했다.


그렇게 한 시간쯤 달려 도착한 황산공원.

밤이었지만 멀리서부터 그곳이 공원이란 걸 한눈에 알 수 있었다.

'황산공원 불빛정원'이라는 축제 중이었다. 2월 28일까지 한다며 그 안에 데리고 오고 싶었단다.

감동이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야경을 좋아하는 나는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천국이 있다면 여기였을까?'라는 기분마저 들었으니까.

아이들도 뛰어다니고 어르신이 탄 휠체어를 밀고 다니는 가족도 보였다. 전망대가 있으니 거기부터 가보자는 신랑의 말에 이끌려 전망대부터 가보았다. 불빛정원이 한눈에 들어왔고 그 반대쪽은 물금역이 보였다. 우리 가족도 조형물과 불빛에 취해 추위도 잊고 공원을 누볐다. 우리끼리 단란하게 불빛을 만끽했다.

신랑이 남자 친구이었을 당시 물금에서 공사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멀리서도 물금역이 보였는데 지금은 높은 건물들이 빽빽하니 들어차서 옛날의 느낌은 전혀 나지 않는다며 변화의 크기와 세월의 속도에 놀라워했다.


그동안 함께한 추억이 많이 없었으니 좋은 곳이 있다 하면 무조건 우리부터 챙기는 신랑이다.

그런 신랑이 무척이나 고맙고 감사하다.

시집오기 전 여행이라고는 작은아버지께서 데리고 가주신 영덕바다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는데 시집오고 나서는 여행 못 다닌 한을 다 풀 수 있을 만큼 많은 곳을 다녔다.


올해 1월 1일만 해도 칠포해수욕장에서 일출을 보고 저녁에는 충남 태안의 꽃지해수욕장에서 일몰을 봤으니 신랑의 추진력은 감히 상상도 못 할 만큼 최고다.

칠포해변가 지나 어디쯤에서의 일출
꽃지해수욕장의 일몰

오늘같이 무작정 나온 산책도 나에겐 작은 여행 같았다. 3시간 정도 걸린 외출이었지만 그 시간 동안 나는 충분히 즐거웠고 행복했다. 무엇보다 가족과 함께라서 더더욱 행복했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이동시간도 많이 소요된다. 그러나 그 시간조차도 많은 이야기들로 가득 채우다 보니 이동하는 시간이 지루하지 않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부러워했다. 3대가 덕을 쌓아야만 한다는 주말부부가 너무 좋겠다고, 부럽다고들 했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웃는 아이, 재롱부리는 아이를 함께 보며 미소 짓고 싶었고, 아이가 밥을 먹으면 오순도순 앉아서 한 숟갈씩 입에도 떠 넣어주고 싶었다. 아이가 아파서 병원에 가야 될 때도 기저귀가방 들어주는 신랑이 그리웠던 게 사실이다.

그런 추억을 함께할 수는 없었지만 그 시간을 보상이라도 받듯이 우리는 시간이 될 때마다 여행을 떠난다.


이미 지나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 아쉬워도, 서글퍼도.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추억의 곳간을 가득가득 채우고 싶다.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눈물로 걷는 인생의 길목에서 가장 오래, 가장 멀리까지 배웅해주는 사람은 바로 우리 가족이다.

H. G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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