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한 듯 씩씩하게'의 저자 김필영 작가님의 책을 읽는데 '느려서'라는 부분이 자꾸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가슴에서 자꾸만 맴돈다.
남일 같지 않아서라는 말이 딱 맞을 수도, 꼭 나 같아서 조용한 응원을 보내고 싶어서인 것 같기도 하고.
나도 참 느린 사람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그때만 해도 국민학교였지만 급식소 시범학교로 선정되어 급식실에서 밥을 먹었다. 다 같이 밥을 먹는 데도, 말 한마디 덜해도 늘 꼴찌였다. 위, 아랫니의 위치가 다른 옥니를 가져서 그런 건지, 어릴 적 너무 잘 체했었기에 꼭꼭 씹어먹어야 구토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던 이유에선지, 그래서 음식물을 목에서 위로 보내기까지가 두려워서였는지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지만 늘 꼴찌로 밥을 먹었다.
달리기는 말해 뭐 하겠나, 학창 시절 12년 통틀어 늘 꼴찌, 100미터 달리기를 24초에 끊는, 조금 빠른 경보 수준의 달리기 기록을 보유했었다.
참, 간혹 넘어지는 친구가 있으면 운 좋게 손등엔 3이란 숫자 도장을 받을 수 있었던 웃픈 날도 있었다.
병원일을 할 때 그나마 빨라졌지만 그래도 생명에 직결된 약들, 주사방법에서는 조심, 또 조심을 해야 했다.
돌이켜보면 느림이란 녀석을 적절하게 이용했던, 가장 조율적인 시간이었던 것 같다.
내가 가장 현타를 맞은 건 바느질 사업을 시작했을 때다. 지금도 진행 중이지만 내 속도는 필영 작가님이 비유로 말씀하신 나무늘보나 다름없었다. 독학으로 바느질을 접했고 독학으로 자격증도 땄으나 대학을 못 나왔다는 그 사실 하나가 나를 낮아지게 했다.
'대학을 다니며 전문가로 자리 잡은 분들에 비할 수 있을까?'라는 늘 저자세의 마음가짐으로 느리게 일해 왔던 것 같다. 지금도 그 아쉬움은 가슴 한구석에서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방통대도 기웃대고 있는 현실이다.
일을 시작하면 나는 나를 달팽이라 일컬었다.
봄에 주문을 받으면 여름에 드렸다.
일단, 내가 만들고 싶은 주문에 먼저 손을 댔고, 만들고 싶던 것은 먼저 손을 데게 되니 더 빨리 만들어 드릴 수 있었다. 주문 순서가 아닌 내 맘대로, 그야말로 편파적으로 일을 했다.
내가 소비자였다면 당장 취소했을 법도 한데, 그리고 섭섭함에 재주문도 없었을 텐데 나는 복이 많은 사람이었나 보다. 주문해 주신 분들은 하나같이 좋고, 배려심 대마왕들이었다.입 한번 댄 적 없고 오히려 좋아해 주셨다.
그 덕에 별 탈 없이 7년째 사업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속도, 이런 마인드로 사업이란 걸 한다고 얘기하는 것조차 부끄러운 일이지만, 나는 이런 얼토당토 안 한 나만의 속도가 좋았다.
나에서 나를 버리고 엄마, 아내, 며느리로 살다 보니 나도 점차 변하기 시작했다.
뜨거운 음식이나 차도 잘 못 마셨는데, 입김 몇 번 불고 후루룩 먹는 나를 봐도 신기하고, 운전도 제법 과감해졌다.
운전 초창기 시절, 친정식구를 태우고 다니면 편하게 잘한다고 칭찬 아닌 칭찬도 들었었는데 요즘은 앞 좌석을 점령한 15세 아들의 잔소리에, 귀에 딱지가 앉을 지경이다. 아휴.
그렇지만 나는 여전히 예전 나의 속도가 좋다. 그냥 천천히,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나만의 속도로 해결하고 싶은 일도 많다.
다른 사람의 속도에 맞추다 보니 내 가랑이가 찢어질 지경이다. 아니, 찢어져도 열댓 번 찢어졌다 붙었을 거다.
그래서 눈물로 보냈던 날도 많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왜 바보같이 울기만 했는지 몰랐다.
지금에 와서 한발 떨어져 나를 바라보니 조금이나마 그 이유를 알겠다. 나는 그들이 원하던 그릇이 못되었다.
나의 그릇은 간장종지인데 내가 국그릇이길 바랐던 이들이 너무 많았다. 나를 그들의 잣대로 평가했고 본인들이 맞다고 우겼던 것이다. 나는 죄가 없었다. 나는 느리고 작은 사람이었는데 말이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좀 받아주면 안 되나?'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본심을 꾸역꾸역 삼키며 살다 보니 내 맘만 다쳤다. 그 누구도 알아볼 수 없는 내 가슴속엔 생채기로 가득했다.
이대로는 아니라는 결심에 이어 작은 용기를 내며 상처를 치유하기 시작했다. 상처를 치유할 사람은 나뿐이란 걸 뒤늦게 알았다. 내 안에 답이 있다는 말,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사람은 고쳐서 쓰는 거 아니란 말이 요즘 자주 들린다. 정말 그런가? 왜 그런 말들이 나오는 거지? 나는 그 말이 너무 싫다. 사람이 기계도 아닐뿐더러 사람을 쓰는 걸로 비유하다니, 웃으며 얘기들 하지만 부정적이고 빈정대는 느낌의 어투라 악한 느낌마저 든다.
사람이 변화된다는 건 대부분 엄청난 사건이나 사고가 계기가 되는데 그런 경우는 알아서 고쳐지고 변화한다. 모두에게는 자기의 때가 있고, 그걸 찾는 것도 그들의 몫이다. 다른 사람이 왈가왈부할 일은 아니지 않나.
사람들은 무릇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죽을 때가 된 거라는데'라는 무시무시한 말로 변화의 단점만 끄집어내서 부각한다.
최소 변화하려는 사람의 마음가짐조차도 함께 싸잡아 묵살시키는 것 같아 슬퍼진다.
나는 고쳐지고 싶지 않다. 잔잔히 변하고 싶다. 그 변화도 내가 마음먹고 천천히 만들어 내고 싶다. 누구의 편견도, 잣대도 필요 없이 말이다.
나를 조금 더 자세히 바라보고 들여다보고 싶다. 이렇게 글을 쓰게 된 것도 나에게 솔직하고 싶고 나를 알고 싶어서 던진 도전장이었다.
나이 40을 넘기다 보니 마음이 싱숭생숭해질 때가 많아졌다. '나만 느린 건 아니겠지?'
조급증으로 나를 닦달할 때도 가끔 있지만 나는 나만의 속도로 꾸준히 가려한다.
"느리면 어때? 상관없어. 내 속도 재지들 마, 나는 나만의 속도로 나의 길을 갈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