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에 대한 호기심이 왕성한 10대에서 20대에 가장 많이 맹출 하기에, 그래서 사랑할 때 난다는 속설도 가진 사랑니를 발치했다. 첫 사랑니를 발치한 지 22년 만에 두 번째 사랑니를 뽑았다.
40대에 사랑니라니, 요즘은 60대에서도 보인 다하니 속설은 속설일 뿐인 가보다.
나의 사랑니는 매복되어있던 이가 아니었다. 나와 함께 살아온 기간이 애법 길었던 이였다.
어느 날 밥을 먹다가 와그작 소리가 났고, 쌀에 든 돌이겠거니 했는데 아마 그때 씹은 건 돌이 아니라 이였던 모양이다.
비비탄총알에 맞은듯한 크기의 구멍이 생겼다.
그러나 아프진 않았다. 아프지 않으니 두어 달 아무렇지 않게 지낼 수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지남에 따라 이에 난 구멍에는 양치를 해도 그대로 자리보존하고 있는 음식물들이 눈에 띄었다.
이쑤시개를 쓰고 양치를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생겼다.
'아, 귀찮아'
콩나물머리라도 낀 날이면 얼은 땅에 삽질하듯 이쑤시개로 파내야 했다.
집에서 시내까지는 차로 30분 정도 거리이다.
그 거리가 왜 그렇게 멀든지, 마음먹은 지 2주 만에 발걸음을 옮겼다. '진즉 올걸, 뭐가 그리 무섭다고' 사실 집과 병원의 거리보다 마음의 거리가 더 멀었다. 치과에 들어가면 나는 소독약 냄새, 이를 가는듯한 윙~윙 거리는 소리, 침을 빨아들이는 석션소리, 그 모든 것들이 나를 쫄보로 만들었다.
그래도 용기를 냈고 과감히 치과에 들어갔다. 11시쯤 갔는데
간호사 : "사랑니발치는 오래 걸리니 이때 오시면 안 되고 아침 일찍 오셔야 돼요. 점심시간이 다되어가서 오후에 다시 와야 할지도 몰라요"
라는 간호사선생님의 단호한 말투에 기운이 쏙 빠졌다.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얼른 빼고 가고 싶었는데 미뤄질지 모른다니,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을 가득 안은 체 대기하고 있었다. 대기 20분쯤 후 진료실로 들어갔다. 진료의자에 눕자마자 보이는, 2개로 나눠진 큰 등이 날 째려보고 있었다.
무서움에 눈을 감고 얘기했다.
나 : "사랑니 빼려고요" 의사 선생님 : "어금니 마취는 오래 걸리기 때문에 오후에 와야겠다. 오후에 올 거면 엑스레이 찍어놓고 가요" 나 : "... 네" 어차피 마음먹은 거 빼고 싶었다. 그래서 오후에 온다는 약속을 하고 엑스레이를 찍고 나오는데 의사 선생님 : "뿌리가 얼마 안 깊네, 퍼뜩 빼면 되겠다" 라고 하셔서 바로 마취에 들어갔다. 그리고 5분 정도 흘렀을까? 입안에 감각이 무뎌지는 듯했을 때의사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해보세요" 나는 최선을 다해 하마처럼 입이 찢어져라 벌렸다. 그리고는 순식간에 이가 뽑혔다. 마취덕이겠지? 사랑니와아픔 없는 이별을 했다. '뭐야, 왜 이렇게 간단하대... 이럴 줄 알았음 진작 올 것을'
간호사 : "이건 처방전이고, 뜨거운 건 이틀정도 먹지 말고 솜은 2 시간 있다 버리세요" 나 : "네, 수고하셨습니다"
하고는 부리나케 도망치듯 나왔다. 운동화도 구겨 신고 병원을 나와서 고쳐 신었다. 방탈출한 아이들처럼 속이 후련했다. '이게 뭐라고' 나를 사랑하자고 말은 잘도 하면서 이런 사소한 것에 용기를 못 내는 걸 보니 아직도 어린아이 같았다. '언제 클래? 에효, 그래도 살았다.'
안도의 한숨이 마구 쏟아져 나왔다. 벌벌 떨리는 손으로 처방전이 구겨지도록 잡고 있었다. 난생처음 운전대를 잡았을 때도, 영하의 궂은 날씨 속에서도 이만큼은떨지 않았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기도도 절로 나왔다.
나를 사랑하는 일, 나를 지키는 일에 게으름 좀 피우지 말자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걱정과 불안을 안고 나를 괴롭히는 일은 그만하자고 타일렀다. 사랑니는 잃었지만 나를 사랑하고자 하는 다짐들은 가득 채웠다. 사소한 일일지는 모르나 나는 오늘도 성장했다.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또 하나 익혔다. 이렇게 익어가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