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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주 Apr 14. 2023

버릴 게 없지만 고약한 선물 같던 날

어려운 엄마의 자리

나는 참 모진어미다.


아침부터 가시 돋친 날카로운 말로 딸아이마음을 난도질했다.


내 생각처럼 되는 것도 아닌데, 보이는 게 전부 인 게 아닐 수도 있는데 아이의 미흡한 모습이 내 눈엣 가시가 되어 아이에게 모진 말을 쏟아부었다.
그 모진 말들은 부메랑이 되어 나에게 되돌아와 온종일 나를 괴롭혔다.
날씨까지 흐려지니 처참한 기분과 함께 땅으로 계속 꺼져만 갔다.

참을 인을 가슴에 새기자고 그리 다짐하는데 나약한 인간인지라 모래성 같은 내 다짐은 거친 파도 한 번이면 자취도 없이 흔적을 감추어버린다.

갈등의 시작은 휴대폰이었다.
등교시간 40분 전부터 10분 간격으로 딸에게 알렸다. 아침식사를 준비해 놓은 나는 최대한 참고 지켜보고 있었다.
등교 10분 전에도 누워있는 아이를 보고 결국엔 폭발했다.
등교시간까지 나오지 않으면 알아서 등교를 하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때부터 아이는 어슬렁거리며 등교준비를 시작했다.

'어찌 저리 태평할 수가 있지?
도대체 무슨 여유로 저럴 수가 있을까?
등교준비를 하고 누워있으면 안 되는 건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하려고 해도 안 되었다. 너무 힘들었다.
부족한 엄마, 모자란 엄마, 공감 못하는 엄마, 이해 못 하는 엄마인 것 같은 생각에 자괴감까지 피어나기 시작했다.

아이를 데려다줬는데 결국엔 학교 앞에서 화산이 터지듯 나도 터져버렸다.
가시 돋친 내 말을 온몸으로 받던 아이의 얼굴은 눈밖에 보이지 않았는데 그 두 눈은 점차 붉어지고 있었고 점점 반짝이는 걸 보니 눈물이 고이는 듯했다.

등굣길은 웃으면서 보내고 싶었고, 하트도 늘 날려주었는데, 오늘은 도저히 힘들고 내키지 않아 아무것도 못해주었다.
눈시울이 붉어진 아이는 조심히 내렸다.

창문을 급히 내리고 "인사도 안 하고 가나?"학교 가는 아이를 큰소리를 잡아 세웠다. 인사할 정신도 없었을 테고 그럴 기분도 아니었을 텐데 무심한 듯 빠빠이를 하고 내 시야에서 사라져 갔다.

글을 쓴 뒤로 나의 감정을 들여다보는 연습이 많이 되었던 터라 받아들이고 인정하기를 반복했다.

한참이 지난 뒤에야 다시 운전대를 잡고 집으로 향 할 수 있었다.
오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운전만 하는데도 무거운 돌을 이고 있는 듯한 힘겨움으로 겨우 도착했다.
시어머님이 출근을 하시자마자 거실에 그냥 누워버렸다. 힘겨움이 눈물이 되어 흘러내렸다.

오랜만에 대성통곡을 했다.
어찌나 울었던지 심장이 아파오는 것 같았다.

아이들은 7살까지 평생 할 효도를 다한다더니 이제부터 고난의 시작인 건가 싶은 생각마저 몰려왔다.

3시부터 비가 온다더니 기상청 이야기가 철석같이 잘 들어맞는 날이었다.
4시에 하교하는 딸아이를 데리러 나섰다.
오전 내내 일도 손에 안 잡히고 눈물만 흘렸더니 눈이 퉁퉁 부어 붕어눈이 되어버렸다. 머리도 띵하고 무거웠다.

내 마음 못 다스린 내 죄인데 누굴 탓하겠나.
하교하는 아이에게 웃어 보이자며 억지로 미소를 지어봤다.
역시 어색하다.
좋은 엄마가 되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는 걸 뼈저리게 느낀 날이다.

시련도, 고통도 모든 게 귀한 거름이 되겠지만 오늘 나에겐 고약하기만 했다.





퇴근하고 온 신랑과 아이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다.
별 얘기 없길래 오늘일은 그냥 삼켜버리려 했더니 불국사아래 겹벚꽃밭으로 데려다준다.

비도 날리고, 내 감정과 닮은 흐리멍덩한 날씨였지만 소녀감성으로 겹벚꽃을 즐기다 보니 한결 가벼워졌다.
꽃멍으로 치유받았던 순간이다.


불국사 겹벚꽃




하루가 무척 길고 험난했지만 이 모든 순간은 소중하고 귀했다.
내 감정도 들여다보고, 아이입장도 되어보고, 아이들과 다시 한번 진지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계기도 되었다.

버릴 게 없지만 고약한 선물 같던 날이다.
이런 선물은 이제 그만 받고 싶다. 정중히 사양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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