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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주 Apr 18. 2023

즐기거라 아들아

중3아들과의 낚시

생뚱맞게 재량휴업일이란다. 무슨 연유인지는 몰라도 아들은 오늘 학교에 가지 않는다.

오늘은 아들과 함께 하기로 약속을 했기 때문에 서둘러 채비를 했다.
낚시, 그것도 베스낚시.

꼭 베스여야 한단다. 동네 부근에는 민물낚시터도 있고 저수지도 몇 군데나 있는데, 굳이 베스여야 한단다.

우리가 낚시할 곳에서 베스를 잡은 사람이 있고, 유튜브에 그 영상이 올라온 걸 보았다며 분명 잡을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다.

그래, 약속했으니 일단 가보자 하고 서둘러 나왔다.
멀리 보이는 산이 뿌연 것을 보니 오늘도 황사가 지독하구나 싶다. 아니나 다를까 어플을 깔아놓은 아들이 대기 매우 나쁨이라고 뜬다며 친절이 알려준다.
그런데도 가야 하냐고 물으니 가야 된단다.

운전대를 잡고 20여분을 달렸다.
뿌옇긴 해도 맑은 날씨 덕분에 기분은 말랑말랑한 게 좋았다.
우린 종종 밤에 산책하러 오던 '영지설화공원'에 도착했다.




아들은 낚시도구가 담긴 가방을 메고 낚싯대를 들고 자연스럽게 물가로 걸어갔다.
"그렇게 좋나?"
"어~완전"

좋다니 할 말이 없다. 나는 다시 차에 갈 요량으로 아들크록스를 질질 끌고 따라갔다. 보조배터리도 차에 두고 새끼오리처럼 졸졸졸 아들뒤를 따랐다.

우거진 버드나무와 그 꽃가루를 온몸으로 맞아가며 우린 물가에 우두커니 서있었다.

공기는 더러울지 모르지만 경치 한 모금하고 나니 속이 뻥 뚫리는 듯했다.


낚싯줄을 던지자 나무에 걸렸다.

버드나무 위로 자꾸만 줄을 던지는 아들을 보고 있자니 답답해져 왔다.
너른 곳을 내버려 두고 왜 그러냐고 구시렁대고 싶었지만 마냥 좋은 아이기분을 망치기 싫어 입을 꾹 다물었다.

그렇게 자리를 옮겨가며 낚시를 했다.
나는 곧장 차로 가려했는데 예상과는 달리 아들옆을 지키고 있었다.
게다가 훈수까지 두고 있다.
"그렇게 하면 안 되지, 진득하니 좀 담가놔라...."
"바다낚시랑 다르다고요"

어릴 적 낚시를 좋아했고 즐겼던 나로서는 이해가 안 되는 행동을 하고 있었다.
도시어부만 봐도 줄을 넣고 기다린다.
인내의 시간을 보내고 기다림을 배워야 할 낚시를 일분도 채 안 돼서 건져내는 걸 보니 화가 치밀었다.
햇볕도 거들듯이 엄청 뜨거웠다.

베스를 잡는 것과 바다낚시는 다르다 하니 지켜보겠노라 했다.
줄을 던져 담가놓는 시간을 재어보니 길어야 5분이다. 아휴. 마음대로 해라며 나는 휴대폰으로 별별챌린지를 해나갔다.
철퍼덕하는 소리에 고개를 드니 생태교란종인 붉은 귀거북이들이 줄줄이 눈에 띈다.

"좋다 말았네" 

물고기인 줄 알았던 아들은 아쉬움에 푸념을 늘어놓는다.
큰 거북이들은 징그러웠지만 아가거북이는 그저 귀여웠다.




글을 쓰다가, 구경도 했다가 낚시하는 아들에게 훈수까지 두느라 집중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햇볕을 피할 곳도 없었다.
둘 다 검은색 체육복을 입고 와서 만만하게 생각했던 햇볕에게 호되게 당하고 있었다. 밤에 하는 낚시가 옳은 건지 고민되기도 했다.



나무데크를 반쯤 지나올 때쯤
동시에 소리를 질렀다.
"엇!! 베스다."
물고기 몸통을 가르는 검정선, 누리끼리한 몸통. 분명 베스였다.
웬만한 고등어크기만 했다.
근처에 있음 오겠지 싶어 한참 동안 줄을 담갔다 뺐다가 했다.
역시나 어신은 아들에게 물고기를 쉬이 허락하지 않았다.
입질도 안 오니 아들도 점점 지쳐가는 듯했다. 구시렁거리는 미세한 소리가 내 귀에 와닿았다.
걸리라는 고기는 안 걸리고 수초만 내내 건져내고 있었다.

"아들아, 즐기거라. 낚시는 손맛도 중요하지만 짜증 내지 말고 여유를 갖고 즐길 줄도 알아야지, 안 그럼 지쳐서 낚시하기 싫어진데이~"

내 말을 수긍이라도 한 듯 이내 조용해졌지만 처음 왔을 때 그 기분은 아닌듯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집으로 돌아가자 했다. 낚시를 하고3시간이 경과한 시점이었다.
돌아오며 아쉬운 마음에 줄곧 낚싯줄을 담갔다 뺐다 해댄다.

오늘 낚시를 실패한 이유에 대해 아들은 녹조를 탓했다.
나는 크게 동조하지 않고 유튜브를 보고서라도 낚시하는 법을 다시 한번 배워보라며 격려를 더해주었다.

다음은 바다낚시로 정했다.
누가 많이 잡는지 내기도 하기로 했다. 가라앉은 기분이 조금은 업되는듯해 보였다.
낚시뿐만 아니라 모든 일들을 즐기며 하는 아들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말없이 끄덕이는 아들을 지켜보았다.
창밖을 보는 아이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낚시는 시간을 낚는다고 하는데 아이는 물고기 아닌 무엇을 낚았을까?


이 모든 시간들이 헛되지 않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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