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청소의 맛

세차

by 박현주

집에서 세차를 했다.
비가 곧 쏟아질 것만 같은 하늘이지만 일기예보는 그렇지 않다고 하니 믿어보기로 했다.
자주 한다고 한 것 같은데 씻겨 내려가는 땟국물을 보니 새삼 놀랍다.

깨끗해지는 차만큼 시원하고 개운하다. 더운 날 동치미 한 그릇을 벌컥벌컥 들이켠 기분이다. 그야말로 좋다.





세차를 하다 보니 글쓰기와 참 많이 닮아있단 생각이 들었다.
솔로 문지르다 보니 먼지를 머금은 차가 깨끗해지며 본래의 색을 드러냈다. 글도 쓰다 보니 내속에 끼어있던 자질구래한 걱정, 근심들이 빠져나오기 시작했고 그제야 드러난 '나'라는 사람을 제대로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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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판을 꺼내어 양손으로 들고 손뼉 치듯 맞부딪히며 먼지를 털어냈다. 이어서 세재 푼 물을 끼얹어가며 솔로 빡빡 문질렀다. 그간 받은 스트레스가 함께 벗겨져 나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걸칠 수 있는 곳에 두고 물기를 뺐다. 벌써 힘이 빠진다.



차량전용으로 쓰는 청소기를 꺼냈다.
널브러진 흙먼지 들을 속 시원하게 빨아들인다. 아주 기특하다.


청소기정리 후, 컴프레서를 켜서 에어건을 들었다. 신랑 장비지만 세차할 땐 요긴하게 쓰인다.
내가 컴프레서를 켜는 건 청소할 때와 타이어공기압을 맞출 때뿐이다.
에어건의 바람으로 차에 앉아 잠든 먼지들을 모두 날려 보내줬다. 역시나 속이 시원하다.

컴프레서를 켠 김에 에어건만 바꿔서 공기압도 체크했다. 이래 봬도 공기압 체크하는 여자다.


차 안을 걸레질로 마무리하려던 찰나, 주문해 둔 유막제거제와 발수코팅제가 도착했다.
시간을 이렇게 딱 맞춰서 오시다니 기가 막힌다.

모른척하려니 박스가 나를 째려보는 것만 같다.
어쩔 수 없이 걸레질을 하고 나서 자연스레 박스를 오픈하고 유막제거제를 들고 유리창을 닦기 시작했다. 하얀 액체 같은 게 흘러나와서 열심히 문질렀다. 뻑뻑해질 때까지 문지르라 해서 팔이 떨어져라 문질렀다.
물로 씻어낸 후, 유리창의 모든 물기를 다 닦아내고 발수코팅제를 문질렀다.
이건 투명액체로 되어있는 제품인데 바르고 나서 2분 뒤 닦으라더니 흔적이 남아 안 지워진다. 내가 잘못한 건가?
다시 발수코팅제를 바르며 문지른 후 바로 닦아냈다. 그랬더니 깨끗해진다.
설명서에 너무 충실해도 안 되겠단 생각이 들었다. 너무 순진했나 보다.

너무 과하게 열심을 냈더니 마동석 배우님의 팔이 된듯한 느낌이 든다. 상완이두근이 단단히 성질이 났다.
성질난 근육에겐 미안했지만 손댄 김에 광택까지 내주기로 마음을 먹었다. 물왁스로 차의 미모를 업그레이드시켜 주었다. 탁월한 선택이었다.

빛을 발하는 자동차를 바라보고 있자니 흐뭇함에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힘들었지만 뿌듯함은 몇 배로 크게 다가왔다.

그냥 차청소였고 몸을 고달프게 한 게 다인데, 몸은 지쳤지만 마음만큼은 가볍고 즐거웠다.
이래서 청소를 하며 물건도, 마음도 비우는구나 싶었다.

개운한 기분이 들어서일까?
팔의 통증도 사그라들고, 기분이 좋아 흥얼거리고 있다.


기분이 꽤 괜찮다.
앞으로 세차도 자주 하고, 방청소도 진지하게 해 봐야겠다. 말이 나온 김에 1일 1 버리기도 다시 시작해 봐야지.

청소의 맛을 새삼스레 느낀 오늘이다.
깨끗해진 차를 보며 흥얼대던 이 기분은 당분간 유지될 것 같다.

그래, 쓸고 닦고 비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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