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호미곶 끝자락에 위치한 초등학교, 걸어서 5분이면 바다를 만날 수 있고 학교 앞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던 조용한 시골학교, 나는 그곳에서 졸업을 했다. 올해가 졸업한 지 딱 30년째 된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30년이라니. 세월이 유수 같다.
몇 달 전에 가본 학교는 격세지감이 피부로 느껴질 만큼 변해있었다.
엄청나게 크다고 생각했던 호랑이동상도 강아지같이 느껴지고, 알록달록한 옷을 입은 학교는 앙증맞아 보이기까지 했다. 병설유치원을 시작해 그곳에서 7년을 먹고 자랐다. 나를 이렇게 키워준 학교에게 참 고마웠다. 고맙디 고마운 학교가 나에게 준 특별한 선물도 있었다. 바로 '펜팔친구'였다.
그 시절 유행했던 펜팔은 신비로웠고 운명적이었다. 학교로 오는 편지였고, OO국민학교, O학년 O반, O번을 지목해서 펜팔편지가 전달되었다. 선배님들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학교, 그것도 우리 반에서 펜팔친구에게 편지를 받은 유일한 학생이 바로 나였다. 내가 3학년? 4학년 때쯤의 일이다. 어찌나 신기하고 좋았던지 하루종일 편지를 들고 다니며 자랑하고 다녔던 기억이 아직까지 역력하다.
아직까지 주소도 기억이 난다. '문경군 산양면 과곡 1리' 까지는 선명하다. 번지수가 46번지였는지, 42번지였는지 헷갈리긴 하지만 이름은 기억에 남아있다. '은경' 미안하게도 성은 기억이 가물거린다. 펜팔친구가 진짜 친구가 되었고, 국민학교 졸업 전까지 연락을 했다. 연락이 끊어진 건 그 친구부터인 걸로 기억한다.
연락이 끊어져 엄청 아쉽긴 했지만 나에겐 귀하디 귀한 추억을 안겨준 사건이었다. 그때 편지 쓰기를 정말 많이 해서인지 모르겠지만 글짓기상도 많이 받았다. 편지의 영향이 분명 있으리라 생각된다. 지금생각해 보면 참으로 고마운 친구였다.
가끔씩 그런 생각을 해본다. '지금 그 친구는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어떤 모습일까? 그 친구도 가끔씩 내 생각을 할까?'
나에겐 특별한 추억을 선물해 줬고 나를 특별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다. 모든 친구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고, 나를 이후로 펜팔이 활성화되는 진기한 현상도 일어났다.
옛날 잡지 뒤편에는 펜팔친구 구함이나 국군아저씨들에게 위문편지 보내기가 실려있었다. 주소와 이름이 깨알같이 적혀있었고 그것을 통해 펜팔이 활발했었던 기억이 있다.
그 시절, 그때는 글을 끄적이며 마음을 전하던 일이 즐비했던 시절이었다. 아~옛날이여~ 같은 이야기지만 그때의 감성과 그때의 일들은 내 기억 속 한 모퉁이에 고스란히 자리 잡고 있다.
며칠 전, 고등학교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를 보며 나에게 마지막 펜팔친구였던 한 오빠와의 일화를 들었다. 오늘은 그 일화에 이어 펜팔의 시작을 되새겨보았다.
그러고 보면 나는 어릴 적부터 편지나 쪽지로 내 마음을 참 많이 전달했고 전하는 걸 좋아했다. 자주 그리 행동했으며, 행동이 습관이 되어 일기도 편지형식으로 많이 썼다.
돌이켜보니 국민학생 때 시작된 펜팔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의 삶에 시발점이 되어준 것 같다. 그러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조금은 다른 삶을 살진 않았을까라는 상상도 해본다. 용기가 부족했던 나는 글을 통해 마음을 전하고 표현했다. 내 의사소통의 수단이 되어준 글 덕분에 이곳까지 오게 된 건 아닐까 하는 감사한 의심도 해 본다.
그 시절 나는 글과 친구가 되어 재미난 하루하루를 보냈던 것 같다. 어찌 보면 그때의 시간들이 내 인생에 없어서는 안 될 밑거름이 되어주었다.
펜팔친구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은 밤이다.
'어디에서 잘 살고 있을까?'
다시 만난다면, 두 손 꼭 붙잡고 고맙다고 전하고 싶다. 너 덕분에 여기까지 온 것 같다고. 정말 고맙다고. 너무 그리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