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좋아하는 일을 하니 행복이 따라온다

바느질은 나의 활력소

by 박현주

신상 원단이라고 해서 아끼던 원단이 있다.

어느 누구도 모를 수 없는 '빨간 머리 앤' 원단이다.

나를 비롯해 주위에 앤을 사랑하는 사람이 많다.

앤을 왜 그리 좋아할까? 궁금했던 적도 있었다.

내가 앤을 좋아한 이유는 불행한 상황 속에서도 긍정적이었던 점, 솔직함과 밝음이 사랑스러웠기 때문이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지금도 여전히 행복하다.




아끼다 똥 된다는 옛말이 맞아떨어지는 게 싫어서 이것저것 만들었다.

이래저래 손을 못 대서 손 풀기용으로 클러치백 하나를 만들었다.

심지(솜)도 붙여서 힘 있게 만들었다.

재봉틀을 쓰려다 손맛을 보고 싶어서 퀼트로 변경했다.

원단에 본을 뜨고 재단한 후 다림질로 심지(솜)도 붙이고 손바느질을 이어갔다.

앤 모습에 퀼팅선을 넣어주고 나니 한결 이뻐 보였다.



자투리원단이 아까워 미니액자에 잘라 넣었더니 딱 맞았다. 그림사이즈가 액자랑 맞으니 신기해서 5개 있던 액자에 모두 원단을 넣어줬다.


원래 하려던 액자 작업은 이게 아닌데 어쨌든 이쁘게 돼서 만족감이 빵빵해졌다. 명함크기의 액자는 앙증맞으며 사랑스럽기까지 했다.

탁월한 선택이었다며 자뻑의 늪에 빠져들기도 했다.



웃고 있는 앤, 행복해하는 앤을 바라보고 있으니 나 또한 웃음이 나고 행복해졌다.


나에게 활력을 주고 행복을 안겨주는 바느질을 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좋은데, 앤까지 더해주니 일하는 내내 미소가 절로 지어지기도 했다.


오늘 아침 9시부터 5시까지 점심도 거른 채 바느질을 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놓을 수가 없었다.

바늘에 찔려 피가 봉긋 솟아올라도 휴지로 닦아가며 바늘을 들었다.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게 이렇게 행복한 일이었는지 새삼 깨닫게 됐던 오늘이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니 행복은 저절로 따라오는 듯하다.

바느질도 좋고, 독서도 좋고, 글쓰기도 좋다.

이 모든 일들이 새로운 것이 아니라 늘 곁에 있던 일들이었는데 깨닫지 못했었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가까이에 있다는 말이 실감 나던 오늘이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