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밀키트로 마라탕을 처음 만났다

마라탕의 맛은...

by 박현주

중학생 딸이 하교 후, 친구들과 마라탕을 먹고 온 날이 있었다.
"엄마, 또 생각나, 또 먹고 싶어. 우리 시내로 이사 갈까?"
"마라탕 때문에 이사를 가자고?"
"응"

도대체 마라탕이 어떤 맛이길래 이사까지 가지는지 무척이나 궁금했다.
주위분들의 이야기를 빌리자면 향 때문에 호불호가 갈린다고 하셨다.

우리 딸이야 먹성이 좋아 향신료 향쯤은 거뜬히 소화해 낼걸 알지만 얼마 전 어느 매체에서 들은 이야기로는 아이들이 가장 많이 배달시켜 먹는 메뉴 1위가 마라탕이라고 했다.

궁금했다.
나는 고수를 뺀 나머지 향신료를 모두 애정하는 사람인데 도대체 무슨 향인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몇 시간 뒤, 딸에게서 카톡이 왔다.
밀키트가 있으니 주문해 보자고 나를 달달 볶아댔다.
맛이 궁금했던 찰나였는데 잘 됐다 싶어 밀키트 2인용짜리 2개를 주문했다.

주문했던 마라탕 밀키트가 주말을 지나 오늘에서야 도착을 했다.
아이스박스에 고이 담겨있었다.
마라탕 육수와 야채, 고기, 중국 당면, 중국의 건두부 푸주, 목이버섯, 떡, 어묵등 진공포장상태로 배달되었다.




제일 먼저 레시피카드가 눈에 띄어 찬찬히 읽어 보았다.
어렵지 않았다.
일단 재료들을 물로 헹구고 육수에 투입될 순서대로 차례차례 줄지어 놨다.
육수가 끓자 레시피대로 시간과 순서에 맞춰 육수에 담가주었다.
재료를 다 넣고 마지막 홍유, 마유라는 기름을 부어 넣고 저어주니 금세 완성이다.

마라탕 향기가 온 거실을 점령했다.
냄새에 예민한 신랑이 퇴근하기 전이었기에 집안창문을 모두 활짝 열고서 냄새 빼기에 열중했다.
가스레인지 후드만으로는 택도 없었다.
선풍기도 틀고 심지어 향초까지 피웠다.
그러다 보니 냄새는 순식간에 자취를 감춰버렸다.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나저나 맛이 궁금했다.
맛이 궁금했던 딸은 어느새 내 옆으로 다가와 숟가락을 장전하고 서있었다.

한 숟갈 뜨더니
"이게 무슨 맛이지? 이 맛이 아니야, 맵기는 왜 이렇게 맵지? 시내 매장서 먹은 게 진짜 맛있는데. 이맛이 아니야."
라며 아쉬움을 토해냈다.

뒤이어 나도 한 숟가락을 떠서 입으로 가져갔다. 오묘한 맛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게 무슨 맛이고? 이게 원래 이런 맛인가? 나는 별로다. 니도 그렇나?"
"맛없어, 이 맛이 아니야. 맵기도 엄청 맵다. 나 못 먹겠어"

'웍으로 가득인데 저걸 어쩌나?' 고민이 시작됐다.
일단 나 조금, 시어어니도 조금 떠서 맛을 보았다. 계속 먹다 보니 먹을만했다.
먹고 나면 혀끝이 알싸한 느낌, 마라 향기, 푸주와 팽이버섯의 꼬들거리는 식감, 당면의 쫄깃함이 입안에서 향연을 펼쳤다.

딸아이 덕분에 마라탕을 먹어봤다.
아이가 그토록 원하던 맛은 아니었지만 내가 먹어봤고, 시어머니가 드셔봤으니 그것으로 됐다고 했다.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음식을 만났던 것도, 맛을 볼 수 있었던 것도 모두가 기쁨이고 행복이었다.

마라탕을 한번 먹고 나니 시내 마라탕의 맛이 궁금해졌다. 시내 마라탕집에 꼭 가보자며 딸아이와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했다.
아이와 함께 마라탕을 먹는 상상만으로 행복해졌다.
마라탕 덕분에 아이와 조금 더 가까워진 것 같아 고맙기도 했다.

결국 오늘 먹은 마라탕의 맛은 행복과 감사였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