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대를 잡은 나는 반대쪽으로 향했다. 5분도 안 걸린 것 같다. 커브하나를 돌고 나니 유난히 눈에 띄는 2층집이 보였다. "욕지도 할매 바리스타"라고 적혀 있었다. 신랑은 검색해 본 집이 맞다며 나를 이끌었다. 차에서 내려 간판과 건물만 보며 걸어가던 신랑은 하필 움푹 파인 도로에 발목을 또 삐끗했다. 한번 삐끗하니 조그마한 틈만 있어도 자주 삐게 된다. 발목이 아프니구시렁대면서도 커피숍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들어가려니 10명 정도 되는 단체손님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들어가니 그다지 넓지 않은 곳이었고 다행히 청년 3명이 전부였다. 어딘가 모르게 익숙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벽마다 다녀간다는 기록들이 가득했고 꼭 학창 시절 떡볶이맛집을 연상케 했다. 연세가 지긋해 보이는 할머님께서 주문을 받으셨다. 커피 한잔과 자색 고구마 아이스라테 한잔을 주문했고 고개와 눈알을 돌려가며 바쁘게 구경을 했다. 금세 음료가 나왔다. 고구마라테는 크게 달진 않아서 더 좋았다. 고소하며 부드러웠고, 맛있는 기분 좋은 달콤함이 입안을 즐겁게 해 줬다.
음료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다음을 기약하며 행운의 소원판이라는 하트모양의 나무방명록을 쓰기로 했다. 앞과 뒤로 나의 소원과 신랑의 일지(?)가 기록되었다. 다음에 오게 되면 꼭 확인하러 오자며 단단히 묶고 가게를 나왔다.
밖은 여전히 비가 흩날렸다. 일단 숙소에 가서 대충 몸을 헹구고 조금 쉬었다가 저녁을 먹자고 했다. 짬뽕이랑 고구마라테 덕분에 배가 아직 불렀다. 별 생각이 없었지만 배고프면 잠 못 자는 신랑을 위해 간단히라도 저녁을 먹기로 했다.
숙소에 와서 씻고 뒤, 에어컨바람에 꿉꿉함을 날려 보내며 저녁 먹을 곳을 물색했다. 숙소를 너무 잘 잡았던 것인지 좌우로 맛집들이 즐비했다. 점심에 먹은 짬뽕집이 있던 반대쪽 옆 건물에는 해녀포차라는 곳이 있었는데 검색을 해보니 이곳도 맛집이라고 했다. 숙소 좌우로 쭉 늘여진 가게가 거의 대부분 고등어전문점이었다. 건물밖 수조에는 고등어전문점답게 고등어들이 수조를 따라 떼를 지어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우리가 고민의 고민을 하다 정한 가게는 바로 "해녀포차"였다. 숙소옆이기도 했고, 배도 그다지 고프지 않아서 술 한잔에 맛난 안주를 먹자며 신랑은 가자마자 지체 없이 주문을 했다. 모둠해산물 한 접시와 고등어회, 맥주와 소주를 한 병씩 주문하고 서야 본격적으로 저녁식사가 시작됐다.
아무리 우리끼리 왔다지만 아이들이 눈에 밟혔다. 신랑과 나는 번갈아가며 연락을 넣었다. 다음은 꼭 함께하자며 신신당부를 했다.
주문한 해산물과 고등어회가 나왔다. 처음 먹어보는 고등어회에 손이 안 갔다. 아무리 음식을 좋아한다지만 낯선 음식에는 호 의롭지 못하다. 소라만 주워 먹고 있으니 신랑이 고등어회를 권했다. 고등어구이, 고등어조림의 맛을 상상하며 고등어회 한 점을 입에 넣었다. 세상에!! 부드러운 살결, 단단하고 야무진 살과 고소하고 비린내도 없는 것이 마치 대방어를 연상케 하는 맛이었다. 재밌는 식감과 고소한 맛이 나를 황홀하게 만들었다. 고등어회가 처음이라 망설이긴 했지만 한입 먹고 나니 왜 망설였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만큼 맛이 끝내줬다.
접시의 바닥이 드러나면 드러날수록 괜히 아쉬워졌다. 과식은 말자며 주문한 음식을 끝으로 하고 숙소로 향했다. 처음 먹어보는 음식에 감사했다. "나... 고등어 회 처음 먹어봤어. 사줘서 고마워."
저녁식사를 해산물로 해결하고 술 한 병에 알딸딸해진 신랑과 함께 포차를 나섰다. 문밖에는 살아있는 해산물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우와~를 연신 외치며 구경하던 그때 길거너편에 사람들이 웅성 되며 모이기 시작했다. 무슨 일인지 궁금했던 우리는 조용히 근처로 다가갔다. 커다란 물고기가 강물이 떨어져 바닷물이 되는 지점에 옹기종기 모여들고 있었다. 온갖 추측이 난무하던 그때, 눈이 마주친 한 어른께 여쭤봤다. '숭어'라는 물고기라며 말씀해 주셨다. 얼마나 됐을까? 낚시하는 분도 생기기 시작했다. 한참을 쪼그려 앉았다가 또 한참을 난간에 붙어서 구경을 했다. 엊그제, 어제 매일 3마리씩 잡았다는 분도 계셨다. 신비로운 구경에 넋을 잃었다. 한참을 구경하고 나서야 발을 옮겼다.
숭어떼
너무 고단했던 신랑은 숙소에 오자마자 일찍이 잠자리에 들었고 나는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내일은 또 다른 섬으로 가야 한다던 신랑의 말이 귓가를 맴돌았지만 여행온 날 밤은 설레는 마음이 진정되지 않아서 그런 건지 잠이 쉬이 오지 않았다.
일어나 창문에 달라붙어서 밖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어두움 가득 내려앉은 바닷가, 짭조름한 바다내음과 꿉꿉한 온기, 건물 밖에는 잠들지 못한 또 다른 영혼들의 고성방가가 한몫을 하며 욕지도의 밤은 저물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