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만에 원단을 만졌는지 모르겠다. 아이들이 방학을 하면서부터였으니 아마도 한 달 만인듯하다. 둘째 아이의 코로나 재감염, 남편의 다리 부상등으로 작업실에 갈 여력이 없었다. 이제 더 이상의 농땡이는 내가 용납할 수 없다.
다음 주는 한 달에 한번, 도서관에서 진행되는 공예체험교실 프로그램에서 에코백을 만든다. 패키지를 30개나 준비해야 되는데 멍 때리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오전도 상당히 바빴다. 응모기간이 오늘까지인 글을 접수하러 새마을회관에 가야 했고 오래된 안경도 바꿔야 했다. 한 달여 만에 보는 지인들과의 점심약속까지 지켜내느라 동동거리며 오전을 보냈다. 아이들이 하교하기 전까지 남은 시간 동안 나는 열심히, 부지런히 움직여야 됐다. 샘플도 필요했고 작업설명서도 만들어야 돼서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작업이 하나하나 끝날 때마다 사진으로 남겨야 했다. 설명서에 들어갈 사진이기에 신중히, 자세히 찍어야 했다. 나에겐 별거 아닌 작업일 수도 있지만 처음 접하는 분들은 헷갈릴 수 있기 때문에 이리 찍고, 저리 찍고 돌려 찍어야 했다.
그렇게 샘플이 탄생했다. 견본이기도 하고 내가 쓸거라 작은 사이즈로 만들었다. 지갑, 휴대폰정도 들어갈 사이즈라 귀여웠다. 게다가 내가 애정하는 짱구그림이라 귀여움은 배가됐다.
덩치에 안 맞게 나는 귀여운 게 좋다. 아기자기한 게 사랑스럽고 애착도 더 생긴다.
오랜만의 바느질이었지만 참 행복했다. 그랬다. 나는 바느질을 할 때 행복했고 완성품을 마주하며 내가 살아있음을 느꼈다. 어수선하던 상황에 내 자리를 찾은 것 같은 느낌까지 더해지니 잠들어있던 온몸의 세포가 깨어나는듯했다. 행복함에 이어 황홀함까지 느꼈다.
누구는 그럴 수 있다. 바느질 그거 별거 아니라고, 별거 없는 거라고. 내가 지나온 발자취를, 그 시간들을 아는 분은 모두 아신다. 살려고 했고, 숨 쉬고 싶어서 해왔다는 것을. 내가 존재하는 이유가 되어준 바느질에 경의를 표한다.
오늘 그림책 전시회(경주시립도서관)에서 책과 함께 전시했던 원화를 찾아왔다. 나는 최선을 다했고 혼신의 힘과 열정을 쏟아부었기에 후회는 없다. 바느질로 책을 만든다는 것이 흔한 방법이 아니기에 자부심도 있었다. 반면 이게 뭐야?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봐 주눅이들 때도 있었다. 눅눅해진 내 마음을 하늘도 아셨던 걸까? 그림책을 구매해 주신 지인분들의 인증 사진은 물론 감동 어린 말들로 나의 마음을 뽀송하게 말려주셨다.
바느질을 하며 잘 걸어왔고, 잘했다는 칭찬 같아 감사하기도 했고, 감동받은 가슴은 훈훈해지기도 했다.
이 길을 계속 걸어야 할 명확한 이유가 생겼다. 명분이 바로 서면 나의 걸음도 더 씩씩해지겠지? 바느질은 혼자 하지만 완성이 되면 나 혼자가 아닌 많은 분들과 함께 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감사한 일이 또 있을까?
바느질을 하게 돼서, 바느질을 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 그런 오늘이 세상 무엇보다 소중하고 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