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가끔은 계획보다 물 흐르듯 흘러가는 시간 속에 나를 맡겨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다.
매일 to do list를 작성하고 줄 긋기에 혈안이 되어 아등바등했다. 여유를 가져보고 싶은 마음에 오늘 해야 할 일 중 긴급한 게 아니면 눈을 꼭 감고 한번 흘려보내보았다. 쉽지 않았다. 꼭 응가를 누고 뒤를 닦지 않은 것 같은 찝찝함이 나를 괴롭히기도 했지만 무시하려고 애썼다.
어? 시간이 흘렀고, 한 고비를 넘겨보니 나름 괜찮았다. 이런 날도 있는 거라며 당당한 자세를 취했다.
내가 한 선택이 결코 나쁘지만은 않다는 걸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만든 짐을 직접 내려놓고 나니 몸도 편하고 마음에도 여유가 생겨 사는 게 즐거워졌다. 나도 모르게 콧노래가 흘러나왔고 하고 싶은 일에 몰두하니 성취감도, 행복감도 최고가 되었다. 마음에 여유가 생기니 모든 일에 관대하고 부드러워졌다.
참으로 간사하지만 이런 모습도 나의 일부분이니까 인정하고 사랑해 주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며칠 전, 도서관 정리를 하며 색연필과 미술도구 일체를 챙겨 왔다. 그림도구들을 보자 가슴이 뜨끈해졌다. 내가 좋아했던 재료들인 데다가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마음이 일어서는 바람에 그랬던 것 같다. 별별챌린지 3기도 그림일기를 쓰려고 마음먹었었는데 언제라고 말할 수도 없이 그림일기에서 그림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림일기에 그림을 못 그리게 되니 허탈하기도 했고, 꾸준히 못해나가는 나를 자책하기도 했다.
미술도구를 가져온 그날부터 꽉 움켜쥐고 있던 주먹을 서서히 펴보기 시작했다. 일단 마음이 편해지니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마음이 편하니 그림도 그릴 수 있게 되는 선순환이 일어났다.
'내가 원하던 게 이런 거였는데...'
못하는 것에 연연하지 말고 할 수 있는 것에 마음을 두고 해 나가 보는 것, 그게 내가 바라고 원했던 그림이었고, 그게 정답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시간을 계획이라는 틀에 가두기보다 물이 흘러가듯 자연스럽게 흘려보내보려 한다. 꽤 괜찮은 시도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