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에 구독 중인 작가님이 어린 시절의 여름을 추억하며 쓴 글을 보았다. 그 이야기가 마중물이 되어 내 어린 시절의 기억도 주섬주섬 꺼내어 본다. 바다의 품 안에 안긴 듯, 2면이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자라고 컸다. 자갈과 돌들이 무성한 바다였지만 그렇기에 우리가 놀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던 곳이다.
나는 농어촌마을에 사는 영락없는 시골아이였다. 여느 시골아이들처럼 곤충도 잡고, 비석차기, 땅따먹기, 구슬치기, 고무줄놀이등 쉴 새 없이 놀았던 추억들이 한가득이다. 사계절 중 손에 꼽는 놀이를 찾자면 여름 바다와 노는 것이었고 그 당시, 최고의 재밋거리였으며 먹거리가 풍부하다 보니 나에게 바다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와 같았다.
우리들의 여름은 행복하다 못해 황홀했다.
여름의 바다는 키즈카페를 능가하는 놀이터를 선물했고 먹거리도 제공했다. 초등학생이었지만 친구들과 나는 버너와 코펠을 챙겨 들고 바다로 향했다. 일찍 마치는 날은 수업을 끝내자마자, 방학에는 온종일 바다에서 먹고 노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살았다. 오죽했으면 엄마와 동생이 바다로 찾으러 오는 일도 빈번했으니까.
튜브를 타고 허우적거리는 물놀이는 우리에게 시시했다. 낚시정도는 우습게 했으니까. 대나무를 구해와 낚싯줄을 달고 작은 추하나 와 바늘을 달면 낚시준비는 끝이다. 미끼가 필요했지만 미끼 살 돈이 없던 우리에게 바다는 미끼도 선뜻 내어줬다. 미끼지렁이 대신 고둥을 돌로 깨서 바늘에 걸었다. 그것으로도 물고기가 안 잡히면 조금 깊은 물에 들어가 다시마채같이 생긴 풀무더기를 찾는다. 긴 머리 여성의 머리칼이 휘날리는 듯 너풀거리고 있는 풀이 있는데 그 풀을 머리채 잡아 뜯듯이 휘어 감아 잡아당기면 풀아래 살고 있는 지렁이를 만날 수 있다. 그 지렁이로 낚시를 하면 백발백중, 노래미는 무조건 잡혔다. 애법 잡힌 생선을 어깨너머 배운 회 뜨기로 생선회도 떠먹었다. 참으로 용감무쌍한 아이들이었다.
1차로 낚시를 하고 나면 고둥과 게를 잡았다. 고둥은 생김새에 따라 맛이 조금씩 달랐는데 뿔처럼 생긴 고둥은 똥이 씁쓸할 때가 많아서 눈에 보여도 모른 척했었고 둥근 모양의 고둥은 똥조차도 달콤했기에 누가 주워갈세라 서로가 서둘러 건져댔다. 고둥이 삶아지는 동안에는 2차전에 돌입한다. 돌사이에 사는 게 들을 잡는 일이었는데 게는 너무 큰 것보다 작은 걸 선호했다. 큰 게라 해봤자 엄지손가락만 한 크기이지만 작은 게가 씹기도 편하고 더 고소했기에 먼저 집어먹는 사람이 임자였다. 먹는 것에 타고난 나는 질세라 열심히 먹어댔다. 게 잡던 추억만 떠올렸는데도 엊그제 먹은 듯 게의 고소함과 바닷물의 짭조름함이 입안에 맴도는 것 같다. 꿀꺽, 침이 절로 넘어간다.
고둥이 다 삶아지면 모두가 고둥주위로 둘러앉는다.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들이 총을 장전하듯 우리는 준비해 간 이쑤시개를 비장한 마음으로 꺼내든다. 고둥을 쉽사리 먹을 수 있게 해 주는 작디작은 나무조각이 그리 이뻐 보일 수가 없다.
그 시절 수렵활동으로 먹었던 것은 먹는 것만 의미했던 건 아니다. 음식을 먹으며 행복도, 추억도 함께 먹었다.
지금의 나는 그때 먹은 추억들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고 있다. 행복했던 기억, 재미났던 추억들이 한 번씩 되살아나 가슴을 뜨끈하게 해 준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기에 더욱 애틋하고 소중하다.
우리는 누구나 가슴속에 추억하나 품고 살아간다.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어린 시절의 추억은 나를 살아가게 하는 힘을 주고 때론 버팀목도 되어준다. 누군가에겐 시시한 추억일지라도 떠올릴 추억 하나 있는 나는 복 받은 사람이다. 지금은 누구누구가 아닌 아무개의 엄마, 며느리로 예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겠지만 우리는 같은 추억을 공유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든든해지고 부유해진다. 그 시절을 곱씹게 되는 밤, 친구들이 격하게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