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에서 놀던 추억

해삼 찾아 삼만리

by 박현주

비가 조용히 내리던 어느 날, 옆집오빠들과 나는 우산을 쓰고 바다로 향했다. 줄지어 걷고 걸어서 5분 후 물가에 도착했다. 비가 오는 바다는 이상하리만치 고요했고 떨어지는 빗방울은 마치 밤하늘에 뜬 별이 반짝이듯 잔잔히 내려앉았다.

우리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그 속으로 들어갔다. 잔잔한 바다에 파장이 일었다. 늘 가는 바다, 늘 가는 자리라 겁도 없이 성큼성큼 들어갔다. 바지밑단을 두어 번 접고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자세를 유지해 들어가다 보면 종아리쯤 잠기는 곳에서 무언가를 만날 수 있었다.
바로 해삼이다. 생김새가 울퉁불퉁하기도 하고 바다의 바닥색과 비슷해서 자칫 못 보고 지나칠 때가 있기 때문에 물과 눈의 거리는 최대한 가까워야 했다.

해삼은 비가 오면 물가로 거슬러 올라온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터라 우리는 해삼 찾아 삼만리에 나섰다. 어린 나이지만 초장만 있으면 꼬들거리는 해삼은 최고의 간식이었다. 맛은 무맛이었으나 식감이 재미나 종종 먹었었는데 직접 잡으러 나선건 처음이었다. 첫 도전치고 꽤 큰 성과를 얻었다. 그 시절 내 팔뚝만 한 해삼들을 여러 마리 잡았다. 나는 물론이고, 같이 간 옆집오빠들도 양손이 묵직했다.

'설마 잡을 수 있을까?' 했었는데 설마가 해삼 잡을 줄이야.

엄마는 종종 해삼과 고둥과 문어로 우리의 눈과 입을 즐겁게 해 주셨다. 그 덕에 해삼이야기를 자주 접해서인지 친근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밤이면 해변가로 나왔다가 동이 틀 무렵이면 다시 바다로 들어가 바위나 돌밑으로 자리를 잡는 녀석이다. 바다로 들어가다 보면 모래주머니가 지렁이모양을 하고 있는 해삼의 배설물이 보이기 때문에 멀지 않은 곳을 살피면 꼭 있다는 것도 알았다. 노란 빛깔과 주황빛깔의 지렁이 같은 생김새를 가진 것도 보이는데 그건 해삼의 알이다. 그 주변을 찾아도 해삼을 발견할 수 있다.

엄마와 함께 바다를 가는 날이면 이것저것 궁금한 게 많아졌다. 귀찮을 법도 한데 엄마는 모든 궁금증을 해결해 주셨다. 그때 배운 것 중 하나도 해삼이다. 그때의 기억, 그때의 냄새, 그때의 소리, 모든 것들이 도미노처럼 떠오른다. 시간을 되돌려 박제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는 잡은 해삼을 담아갈 그릇이 없었다. 주머니에 넣고 갈 수도 없는 일이었다. 과감히 쓰고 있던 우산을 뒤집어 들었다.

우산 속에 바닷물을 약간 담고 해삼을 담아 들었다. 조용히 내리는 비를 맞으며 집까지 조심히 운반했다.


집에 도착할 때까지 해삼은 살아있었다. 자고로 맛난 음식이나 특별한 음식은 어른께 보이고 먹는 게 순서임은 알지만 아무도 안 계셨기에 일단 한 마리만 꺼내서 배를 갈랐다. 알을 품은 암컷이었다.

'암컷이네, 미안해'

먹는 것도 먹는 거지만 어린 마음에 생명을 해한다는 생각이 들어 미안하기도, 일말의 죄책감도 들었다.

해삼의 내장을 긁어내고 알은 따로 분리하던 장면을 목격한 여동생은 해삼을 맛볼 생각에 덩실거리며 신나 했다. 좀 전까지 미안했는데 신나 하는 동생과 해삼을 먹을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해산물킬러인 동생과 나는 나란히 앉아 오감을 다해 맛있게 즐겼다.

얼마 뒤, 외출했다 돌아오신 엄마께 자랑스럽게 해삼을 내보였다.


"너희끼리 갔었어? 위험하게, 큰 것도 잡았네."
"비 오면 해삼이 물가로 나온다 하셔서 한 번가 봤는데 많이 있더라고요. 깊이도 안 들어갔어요. "


잡던 기억을 차곡차곡 떠올리며, 침도 튀겨가며, 신나게 이야기했다. 마치 큰일을 해낸 것처럼 의기양양했던 날이었다.

바다에 살아서 가질 수 있는 추억, 기억들이 많다. 바다에 살 수 있어서 행복했다. 그 시간이 30년도 더 흘렀지만 내 가슴속에, 내 머릿속에는 여전히 아름다운 추억으로 모셔져 있다.

'해삼하나로도 알콩달콩 참 재미났는데~'

추억을 반추하는 지금, 나는 누구보다 행복한 사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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