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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주 Nov 01. 2023

장하다. 내 강아지

아침이 밝았다.
오늘 아침은 다른 날보다 공기가 유독 무거운듯하다.






아들이 지원한 고등학교 합격발표가 오늘 오후 2시에 있었다.
아침부터 2시까지 시간은 더디게만 흘렀다.
흐르는 시간이 길게만 느껴지는 건 얼른 합격소식을 품에 안고 싶어서였으리라.

평온해 보이는 아들과 달리 나는 시계만 계속 쳐다봤다.
2시라...
오후근무를 시작하는 시간이라 조바심이 났다.
내 간절한 마음을 하늘도 알아보신 걸까?


늘 진료시간이 되기도 전에 오후진료가 시작됐는데 2시가 다되어가는데도 원장님이 안보이신다.
하늘이 주신 기회라며 열어두었던 고입전형포털 사이트에 들어갔다.
합격자발표를 누르고 인적사항을 적어 넣는데 칸은 또 왜 그리 좁은지 굵은 손가락 덕분에 오타가 나 지우고 쓰기를 반복했다.
곧 진료도 시작인데 애가 탔다. 설상가상 인터넷까지 버벅대는지 화면이 바뀌는 그 짧은 찰나의 시간이 마치 5초는 되는듯했다.



갑자기 울컥했다. 감사하다고 되뇌고 또 되뇌었다.
나도 공고를 졸업했기 때문에 특별전형합격이 주는 기쁨을 안다.
이번엔 내 일이 아니라 아들일이어서 그랬을까?
내 기억 속 그날과 오늘의 기쁨은 비교할 수가 없을 만큼 더 크고 진했다.

간 큰 아들 덕분에 더 애가 쓰였던 건 사실이다. 그 학과가 아니면 다른 건 배울 필요가 없다며 으름장을 놓았었기 때문에 무조건 합격이어야 했다.
감사하게도 합격소식을 보게 되고 가족톡방에 공유를 했다.
장하다고, 축하한다는 문자를 보냈고 즐거운 마음으로 오후근무에 임했다.

그 학교에 가면 기능대회 나가는 선수도 될 거라며 포부가 대단하다.


어릴 적부터 자동차장난감만 보면 바퀴란 바퀴는 전부 분리해 댔고, 그림책도 자동차책만 사달래서 수십 번씩 읽게 만들더니, 커가면서는 자동차프라모델을 사서 직접  차를 만들었다. 자동차와 오랜 시간을 함께한 아이가 실로 대단해 보인다.
지금은 자전거도 직접 기름치고 고쳐가며  탈정도로 손재주는 기가 막힌다.
아빠도 손재주가 좋고 나도 손재주가 없는 건 아니라 좋은 건 타고났나 싶기도 하다.
아들이지만 아빠만큼 든든하고 세심해서 의지될 때가 많다.
잘 커줘서 고맙다.

무엇보다 아이가 원하는 공부를 하게 된다는 사실이 가장 기뻤다. 좋아하는 건 열심히 한다는 아들말에 벌써부터 내년이 기대되고 있다.





퇴근 후 아이의 합격을 축하하기 위해  고깃집으로 향했다. 밥을 먹으며 낮에 듣지 못한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무엇보다 오늘의 기쁨을 만끽했으면 좋겠고,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살다 보면  매일매일이 오늘 같지 않을 테고 쉽지 않은 여정이 되겠지만 그럴 때마다 오늘 얻은 이 기쁨을 꺼내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다시 한번 축하해.
너의 앞날을 응원하고 축복한다, 장하다. 내 강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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