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주, 일나 봐라" "6시 넘었나? 내가 분명 오늘은 6시까지 늦잠 잔다고 했던 거 같은데" "비진도 가자, 준비해" "잉? 아랐어" 눈을 반쯤 뜬 채 벽 쪽으로 다가가 더듬거리며 가방을 꺼내고 옷걸이에 걸린 트레이닝복을 꺼냈다. 씻기 바쁘게 옷을 갈아입고 가방에는 접이식 우산 2개, 물 3병, 바나나 2개를 담아 차에 올랐다.
배편 예약을 위해 사이트로 들어가니 매진이다. 혹시나 여유좌석이 있을까 해서 한솔해운으로 전화를 넣었다. 배편은 6시 50분, 10시 50분 2차례가 있다고 하시며 배표는 현장구매라고 하셨다. 지금 출발해서 통영여객선터미널까지 가도 9시밖에 안 되는데 시간이 너무 남았다. 거듭된 고민으로 우리는 비진도여행을 다음 주 토요일까지 미루기로 했다. 다음 주 토요일에 일시적으로 근무가 없기 때문에(원장님 사정상) 그때 여행을 가기로 했다. 걸을 준비를 다하고 나온 터라 그냥 돌아가기가 아쉬웠다. "나온 김에 보문호수나 한 바퀴 돌고 들어가까?" "그러자" 말이 나오자마자 차를 냉큼 돌렸다.
보문호수에 도착하니 7시 14분. 오랜만에 오니 설레기도 하고 아직 뜨겁지 않은 날씨가 봄처럼 시원했다. 호수로 들어서니 안개가 뿌옇게 낀 게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유유히 떠가는 오리 떼들이 여유로워 보여 한참을 쳐다보기도 했다. 사진 찍으랴, 즐기랴, 신랑을 쫓아가랴 바빴지만 나름 상쾌하고 즐거운 산책이었다.
가을 보문호수는 작년에 이어 처음이었다. 새벽안개를 가르며 걸어서 그런지 상쾌한 기분은 발걸음을 가볍게 해 주었다. 공기를 들이마실 때마다 이슬에 녹아내린 풀잎향이 코를 비집고 들어왔다. 길을 지날 때마다 또 다른 풀잎향들이 코를 즐겁게 해 줬다. '아~행복해!!' 행복하다는 마음이 절로 들었다. 행복한 마음은 이내 감사의 고백까지 끌고 나왔다.
그렇게 계속 걸어가던 중 떨어지는 낙엽들이 내 눈 안에 들어왔고 이윽고 바닥에 떨어진 나뭇잎에 시선이 갔다. '나무들도 시절을 쫓아가며 때에 맞게 내려놓는데 나는 왜 이러고 있는 걸까?' 요즘 독서와 일, 글쓰기와 하고 싶은 많은 것들을 움켜쥐고 나를 혹사시키고 있었다. 즐기며 하지 못하고 악으로 깡으로 버티는 나는 무한하고 위대한 자연 앞에서 부끄러워지고 작아졌다.
떨어트리는 낙엽조차 고귀해 보였다. 떨어진 낙엽은 열심히 버텨낸 흔적 같아 밟는 것도 미안했다.
연말을 향해가는 지금, 중요한 일이 많음에도 욕심을 놓지 못해 낑낑대던 나를 반성하게 된다. 하나만 열심을 내고, 차례대로 하나씩 해내면 될 텐데 말이다. 조급 해하지 말자고, 욕심부리지 말자고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