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옷가게에서 딸이 입을 곰돌이 잠옷과 팬더곰이 그려진 맨투맨티셔츠를 사서 나왔다. 나는 청치마를 들었다 놨다 하길 반복하다가 그냥 돌아섰다. 살 빼서 입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니 욕심을 버리기로 했다.
옷가게를 나오니 들어갈 때보다 2배는 추워진듯했다. 거리를 거닐다가 주차된 곳을 찾아왔다. 오늘은 그냥 돌아가자며 이내 발길을 돌렸다.
집 주소를 찍고 운전대를 내가 잡았다. 반주로 맥주 한잔 걸친 신랑을 위해서. ic로 가는 길이 나왔는데 네비에서 길이 막힌다고 길이 빨갛게 떠있었다. 신랑이 아는 길이라면 국도로 가자고 해서 직진을 했다. 그 선택은 차후에 느낀 거지만 탁월한 선택이었다. 얼마 안 가 계기판에 빨간색 돛단배 같은 불이 들어왔다. "자기야, 계기판에 불 들어왔는데? 배 같은 거 이거 뭐지?" "일단 차 세워봐라"
이내 우측으로 차를 세웠다. 보닛을 여니 엔진 쪽에서 미세한 연기가 피어났다. 엔진열을 식히는 호수가 터진 것 같다는 신랑은 곧장 카센터 하는 친구와 통화를 했다. 밑으로 떨어지는 물도 없고, 어디 세는 곳도 보이지 않는다고 전했다. 바로 응급처치에 들어갔다. 차 바로 옆에 수도꼭지가 있었다. 어찌나 반갑던지. 반가움도 잠시, 꽉 잠겨있어 물은 한 방울도 얻지 못했다. 급한 대로 마시려고 가져온 물병 500ml를 전부 부었다. 열이 가시는지 연기는 나지 않았다. 조금만 더 가면 의성 시내니 일단 가보자고 했다. 식은땀도 나고 손발이 떨리기 시작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기도 하고 집에 갈 수 있을지 염려되었다.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더니 의성터미널을 코앞에 두고 연기가 다시 모락모락 피어났다. 급하게 차를 돌려 공터에 주차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카센터 앞이었다. 주말이라 닫혀있었다는 게 아쉬울 뿐이었다. 신랑이 통화를 하더니 이내 사라졌다.
자동차밖으로 나온 딸이 추운데도 불구하고 차를 타지 않았다. "추운데 차 타고 있어. 아빠 마트 갔나 보다" "싫어. 안 추워" 차를 타라는 말로 실랑이를 했다. 도저히 추워서 더 이상 밖에 있을 수가 없었다. 얼른 차에 올라탔다. 그러자 딸도 올라탄다. "안 춥다며? 너 혹시 연기 나서 무서워서 안탔나?" 라고 물었더니 지그시 웃는다. 아이는 아이구나 싶어 나 또한 미소를 지었다.
의성 터미널 부근에서
잠시뒤, 큰 물병 6개짜리 한 묶음을 들고 신랑이 나타났다. 물을 거의 2 통 가까이 붓고 나니 연기도 안 나고 엔진 온도계도 괜찮아졌다. 16분쯤 달리다 다시 물을 보충했다. 다행히 호수가 전부 터진 게 아니라서 이렇게 보충하면서 가면 집에 갈 수 있다고 했다. 긴장한 나와 딸은 말도 한마디 못 한 채 시간만 체크하며 내달렸다. 천천히 달리는 나를 보며 속력을 내도 된다고 신랑이 웃으며 이야기를 한다. "뭐가 걱정이고, 남편이 있는데" "그러게, 아는데 이런 일이 처음이라서 긴장이 되네" 신랑이 던진 말 한마디에 걱정과 두려움이 냉큼 도망갔다. '그래, 신랑 있는데 뭐가 무섭노' 오는 내내 신랑은 나와 딸을 놀렸다. 연기가 난다며 호들갑스러운 연기에 몇 번이나 속았는지 나중엔 긴장을 하다못해 온몸이 돌처럼 굳을 것 같았다. 긴장을 풀어주려고 했다는 말조차도 거짓말 같았다.
그때부터는 시계에 집착하지 않고 신랑이 세우라고 할 때만 차를 세우며 물을 보충했다. 다행히 집에 무사히 도착했다. 집에 오자마자 널브러졌다. 집을 나간 지 6시간 만에 복귀했지만 6시간이 마치 60시간 같았다.
가는 길에 그랬다면 어쩔뻔했으며, 큰 호수가 터져서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었음, 그래서 엔진이라도 망가졌으면 또 어쩔뻔했나!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예상 도착시간보다 40분 정도 더 소요됐지만 이게 어디냐며 감사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찜닭 먹으러 갔다가 웃지 못할 해프닝을 만들고 왔다. 우리 차는 아직 카센터에 있다. 아주 작은 호수가 터져서 엔진도 다 들어내야 할 만큼 일이 많다고 했다.
지금 이렇게 웃으며 글을 쓸 수 있음에 감사하다. 이런 상황 덕분에 하루하루가 심심하지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