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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휴대폰 덕분에 깨우치다

by 박현주

안개와 구름이 자욱하고 하늘빛마저 회색으로 칠해놓은 듯 우중충하다 보니 기분까지 회색스러워진다.

기분도 이런데 중3아들은 큰맘 먹고 사준 휴대폰을 3일 만에 박살 냈다. 큰소리를 내고 싶지만 아침에 본 카페글 중 육아이야기를 읽었던 터라 나쁜 엄마의 모습을 숨기려 애썼다. 카페글이 나를 잡아주었고 아들을 살려주었다.


어제저녁에 있었던 일이다.
저녁을 먹고 나니 6시 반이었는데 잠이 몰려온다는 신랑이 잠을 쫓으러 나가자 했다. 아들과 강아지까지 데리고 30분 정도 산책길에 나섰다.
나는 걸려온 전화에 심취해 있었고 아빠와 아들, 우리 집 개(공주)는 열심히 발걸음을 옮겼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들은 핸드폰의 이상을 알렸다.
어이가 없고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강아지산책줄은 자기가 잡고 있었으며 굳이 휴대폰을 꺼내야 할 이유가 있었냐고 한마디 쏘아붙였다.
어린아이도 아니고 왜 그렇게 칠칠맞냐고 2절까지 해댔다.
한 달도 아니고, 일주일도 아니다. 고작 3일 됐다.
싼 핸드폰도 아니고 아빠와 큰맘 먹고 바꿔준 신형 핸드폰이었기에 울화가 치밀고 짜증이 벌떼처럼 몰려왔다.
아빠는
"휴대폰을 왜 이리 약하게 만들었냐" 며 제조사를 탓했지만 나는 아들의 조심성 없음을 꾸짖었다.
아빠의 중재에 2절에서 끝냈지만 나는 10절까지 할 분노가 가득 차있었다.

내 감정에 환기가 필요했다. 그래서 아침에 못다 쓴 챌린지글쓰기에 몰두했다.
보통 퇴고까지 2시간 반~3시간이 걸리는데 오늘은 배로 걸린듯하다.
글을 쓰다 보니 주제에 집중해야 됐고 그새 화는 어디로 갔는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정상적인 나로 돌아왔다.

'어차피 엎질러진 물, 내일 서비스센터나 가자!'
마음을 비우니 한결 가벼워졌다. 진즉 인정하고 받아들일걸, 나의 그릇은 아직도 간장종지인가 보다.

아침 9시. 서비스센터 문이 열리자마자 들어갔다.
우리가 일등인 줄 알았는데 여러 명이 계셨다.
'다들 부지런하시네'
접수를 마치고 수리사님과 대화를 이어갔다.

"이건 액정 갈아야 됩니다."
"흰지 그거 고장 난 거 아니고요?"
"네. 보험은 들어놓으셨어요?"
"네~ 산지 일주일도 안 됐어요~"
"액정수리비용은 38만 원입니다. 수리하시겠어요?"
"네, 해주세요"
"30분 정도 소요되니 조금만 기다려주시겠어요?"

내 아까운 30분을 알차게 쓰기 위해 무언가를 해야 했다. 먼저, 이전한 서비스센터를 아들과 한 바퀴 둘러보았다. 넓기도 했고 새 건물이라 깨끗해서일까? 내 기분이 회색에서 하얀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다 둘러봐도 남은 시간 20분, 글을 쓰기 시작했다. 아들은 글 쓴다는 나를 이상한 미소를 띠며 바라본다. 부끄러운 건지, 무슨 짓을 하냐는 듯한 알 수 없는 미소.
그러거나 말거나 글을 썼다. 내 주특기, 시간 날 때마다 뭔가를 해야 하는 병. 잘 때 말고 자투리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지금처럼 짬이 나면 글을 읽든, 글을 쓰든 뭔가를 해야 된다.
가만히 있음 도태될 것 같은 망상 아닌 망상으로 나를 채찍질하지만 나는 그 채찍질을 즐기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 채찍질을 그만하려고 시작한 게 걷기였고 글쓰기였다.
조금 더 나를 내려놓아야 될 거 같은데 쉽지 않은 일이다.


30분 후, 아들의 휴대폰이 고쳐졌다.
"구매하신 지 일주일이 아니라 나흘째네요. 그래서 팀장님께 말씀드렸고요. 무상으로 처리해 드렸습니다. 이폰은 떨어트리면 무조건 고장 난 다고 생각하셔야 돼요"
"정말요? 진짜 감사합니다"

보험처리를 하려 하긴 했지만 자부담 3 만원이 있었던 터라, 어쨌든 돈 나갈 생각에 시무룩했었는데 돈도 아끼고 보상서류접수에 피곤할 필요가 없게 되니 기분이 급 좋아졌다.

기분이 좋은 나머지 2층에서 1층까지 계단을 날아온 것 같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내려왔다.
속이 후련해지자 아들이 놀라워할 만큼 자비로운 엄마로 변신했다. 다혈질엄마라 미안하지만 나도 인간이라 그렇다는 걸 이해해 주길 바라고 있다.


집에 오는 길은 두 남매가 서슴없는 설전을 벌이고 있다. 에효. 이 전쟁의 끝은 있는 걸까? 전쟁하지 않으면 안 되나? 이제방학시작인데 겁부터 난다. 제발 그만하면 안 되겠니? 난 좋은 엄마이고 싶다고, 제발!

내 마음이 오르락내리락할 때, 한없이 짜증이 솟구칠 때, 끝도 없이 바닥으로 추락할 때, 그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 우리의 마음도 서비스를 받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서비스받을 수 있는 곳은 있을까? 어떡하면 서비스를 받을 수 있을까?

마음도 서비스받을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

걷기, 글쓰기, 독서, 명상 등 나를 위한 시간,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 내가 행복할 수 있는 취미, 내가 최고가 되는 무언가를 하는 게 답일 것 같다.
마음서비스센터까지 가는 길이 멀 수도 있고, 어려울 수도 있고, 쉽사리 다가설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오늘도 서비스센터를 이용하고 있다.
집중하며 글 쓰는 이 시간이 내가 고쳐지고, 바로서는 시간이다. 이 시간을 꾸준히 지켜나가며 고쳐지고 바로 서고 싶다. 엄마로, 아내로, 그리고 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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