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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주 Nov 19. 2023

인생사 새옹지마라 했다

내 휴가가 잡힌 뒤 가장 기뻐했던 건 신랑이었다.
토요일도 근무를 하니 1박 2일 여행을 가더라도 빡빡하게 다녀야 했기에 토요일근무 없던 휴가를 누구보다 반가워했다.
'비진도'
몇 번이나 가자고 말했던 섬이라 신랑의 기대가 무척이나 컸다.
나 또한 기대가 컸다.
4시간 트레킹쯤이야 다 감수하고도 즐기러 가겠다고 큰소리를 뻥뻥 쳤는데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어제 새벽 2시 반.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여행 간다는 설렘 때문인지, 전날밤 일찍 잠을 청해서인지 신랑은 벌써부터 여행채비에 바빴다.
여행길을 환호라도 해주듯 눈구경하기 어려운 경주에 눈이 내리고 쌓여갔다.

달리다 보니 눈발이 애법 거셌다.
'이렇게 가도 괜찮을까?'
염려스럽긴 했지만 열심히 달렸다.
집에서 출발한 지 30여분이 흘렀다.
신랑은 화장실에 가고 싶다며 통도사휴게소로 차를 몰았다.
소형차, 대형차가 갈리는 간판이 있는 길을 지나자 휘발유냄새가 날카롭게 코를 찌른다.
"밖에서 나는 냄새가?"
이상한 낌새를 느낀 남편은 차를 세우자 보닛을 열었다.

"아~~~~ 기름 센다. 도대체 수리를 어찌한 거고?"
신랑의 분노가 차오르기시작했다.
호수를 잡아주는 집게를 벌리려 했으나 공구가 하나도 없었다.
대충 밀어 넣고 기름이 새는지 보고서 화장실을 다녀왔다.
다행스럽게도 신랑이 다녀올 때까지 기름은 새지 않았다.
휘발유냄새도 조금 가신듯했다. 불안하긴 했지만 다시 달렸다.
눈발이 갈수록 거세졌다.
내차는 경차라서 유독 더 걱정스러웠다.
지금 신랑차도 냉각수문제로 카센터에 들어가 있지, 고쳐서 2주 만에 받은 내차도 사흘 만에 이런 일이 벌어지니 신랑의 화가 머리끝까지 날만했다.
입을 꾹 닫은 채 그가 화를 가라앉히길 바라고 있었다.

부산으로 갈리는 길목에  졸음쉼터가 보여 차를 한번 더 확인해 보자고 했다.
가로등이 있는 길에 주차를 했고 휴대폰으로 그곳을 비췄다.
여전히 기름이 새어 나왔다.


새벽 4시, 모두가 잠들어있는 시간이라 공구를 구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 계속 가긴 무리겠다며 돌아가자고 회유했다.
차 2대가 동시에 고장 나고, 기다렸던 섬여행이 미뤄지니 화가 날 법도 했다.
그런 신랑이 혼자 마음을 다스렸으면 하는 마음으로 조용히 있었다.
처음엔 허탈해했고, 잠시뒤 분노했다.

'3대가 덕을 쌓아야 들어간다는 독도보다 더 가기 힘든 것 같네.'
나는 이렇게 막히는 상황이 닥쳤지만 화도, 분노도  나지 않았다.
요즘 읽고 있는 책이 마음공부가 되어줘서일까?
화도, 허탈감도 나를 잡아채지 못했다.

'더 좋은 일이 일어나려고 그런가?'
좋게 생각하려고 마음을 바로잡았다.






다시 돌아온 우리.
연장창고에서 롱로즈를 꺼내와 호수를 다시 끼어넣었다.
속 들어가 버리는 호수 때문에 신랑은 어이가 없어했다.
연장 몇 개를 차에 싣고 목욕탕이나 가야겠다며 길을 나섰고 난 방으로 돌아와 책을 펼쳤다.

'눈이 내려 갑자기 차가운 날씨에 감기가 들까 봐 길을 막으신 건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목욕을 다녀온 신랑은
"내 분노장애 같제? 와 이래 화가 나긋노? 갔으면 추워가 고생했으려나?"
"그래, 화를 좀 마이 내대. 화낸다고 상황이 달라지나? 달라지면 나도 화냈겠지. 갔으면 추워서 생고생했을 수도 있다."

갔으면 고생했을 거라며 서로를 다독였다.
비진도를 또 기다려야 되지만 얼마나 좋으려고 이렇게 애달프게 하는지 기대가 된다.

끝내줄 비진도를 기대하며 하루하루를 잘 지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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