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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향기

by 박현주

오늘도 역시나 바빴다.

내일이 장날이라 전날인 오늘은 여유로울 거라 생각했다.

큰 착각이자 오산이었다.





연말이라 건강검진 환자가 많았다.

우리 병원은 임상병리사가 따로 없기 때문에 피검사는 외부업체를 이용한다.

그 때문에 채혈은 우리 간호사들의 몫이다.

진료 보시는 환자분들의 주사, 건강검진하시는 분들의 채혈을 동시에 하다 보니 정신이 없었다.

제대로, 놓치지 않고 하기 위해 정신을 곤두세우고 일을 했다.

중간중간에 수액오더까지 나오면 마음이 다급해졌다.


수액오더가 많아 준비된 수액을 다 쓰고 새로운 박스를 여는데 갑자기 익숙한 향기가 내 기억을 더듬거렸다. 나도 모르게 어느새 국민학생시절로 돌아가있었다.






어린 시절, 인형과 옷이 그려진 종이인형을 자주 갖고 놀았었는데 딱 그 종이인형 향기였다.

함께 종이인형놀이를 했던 옆집언니, 종이인형을 사기 위해 문방구를 집처럼 드나들었던 기억, 종이인형을 따라 가위질을 해 가며 뿌듯해했고, 혹시나 인형옷을 인형에 걸 수 있게 만든 고리가 떨어지려 하면 테이프를 이용해 단단히 붙이기도 했던 추억이 몽글몽글 피어났다.


바쁜 와중에도 어린 시절의 향기가 나를 사로잡았다.

종이인형을 들고 가위질하던 어린 소녀, 옆집언니옆에서 재잘거리던 어린 시절의 내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잠시나마 행복했고 추억할 수 있어서 기뻤다.


살다 보니 기억을 건드리는 향기가 있다.

문구점에 들어서면 흩날리던 종이냄새, 간혹 문구점보다 더 좋아했던 선물의 집에 들어갔을 때의 향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종이냄새를 좋아했던 것을 보니, 그래서 종이인형 기억이 순식간에 떠올랐나 보다.


옛 추억의 장난감들이 인기로 되살아나서 요즘도 종이인형을 다시 볼 수 있게 됐지만 옛 종이의 질감, 향기와는 판연히 다르다.


지금의 종이인형이 내 추억을 대신해 줄 수는 없지만 기억이 소환됐다는 사실하나만으로 행복했다.


박스향기하나로 추억을 소환할 수 있어서 가슴이 벅찼다. 오후 내내 어린 시절의 나와 동화되는 재미도 솔솔 했다.


추억의 향기가 되살아나 행복한 하루였고, 소중하지 않은 추억이 없고 소중하지 않은 향기 또한 없다는 생각이 가득한 하루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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