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6년 전의 일이다. 둘째를 임신해 있을 때 동서도 첫아이를 임신했었다. 그때 우리는 한집에서 함께 살고 있었다. 도련님부부, 우리 가족 3명, 시어머님까지 방 3개짜리 집에서 부대끼며 살고 있었다. 신랑은 타지에서 일했기에 주말에만 볼 수 있었다. 그렇게 사는 게 쉽지도, 어렵지도 않았다. 도련님은 교대근무여서 얼굴을 자주 볼 수 없었고, 동서도 방에서 자주 나오질 않아 부대끼며 산 것 치고는 거리감이 있는 채로 지냈었다. 나는 임신초기, 동서는 임신중기 때였다.
토덧으로 힘든 시기를 지내고 있을 때라 그때의 일이 더 크게 다가왔다.
시어머님은 일을 다니셨기에 나랑 동서만 집에 있을 때가 많았다. 한집에 임산부가 둘이었다니, 다시 생각해도 콧웃음이 난다. 한집에 같이 살았지만 얼굴보기가 쉽지 않았다. 방에서 나오기가 싫었던 건지, 우리랑 마주치는 게 껄끄러웠던 건지 아직까지 알 수 없다. 놀랍게도 함께 밥 먹은 기억이 없다. 그렇게 데면데면하게 지내고 있었다.(지금은 자매처럼 친하게 잘 지낸다.^^)
어느 날, 냉장고를 보니 떠먹는 요구르트와 살구빛봉지에 무언가가 잔뜩 담겨 있는 걸 보았다. 뭔지 궁금하긴 했지만 누군가 이야기를 하겠거니 싶어 궁금함을 잠재웠다. 얼마뒤, 동서가 봉지를 꺼내면서 엄마가 주셨다길래 가자미눈으로 훔쳐봤더니 두릅튀김이었다. '두릅튀김이라고? 맛있겠다. 아~먹고 싶다.' 한번 먹어보라고 권해야 먹을 수 있을 거 같아서 끼니때마다 기다리고 기다렸다. 한아름이나 되는 양이였기에 혼자 다 먹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나는 튀김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튀김은 신발을 튀겨도 맛있을 거라는데, 입덧을 해서 입맛도 없을 때 좋아하는 튀김을 봤으니 얼마나 반가웠던지, 아직도 그때 그 기분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그날저녁, 다음날, 또 다음날이 되어도 먹어보란 소리가 없었다. 식탁에서 동서와 마주쳤는데도 혼자서 꺼내 먹더니 결국은 다 먹어버렸다. 떠먹는 요구르트도 잔뜩 있었는데 그것까지 전부.
허탈했다. '한 입만, 단 한 입만 먹었더라면'을 며칠간 곱씹었다. 두릅튀김은 시장에 가서도 살 수 없는 것이라 아쉽고 슬펐다.
그렇게 이 일은 16년간 가슴속에 묻고 살았다. 16년이란 세월 동안 두릅을 먹지 않았다. 그냥 꼴 보기 싫었다. 두릅은 죄가 없지만 그냥 미웠다.
해마다 봄이 되어 두릅을 마주하게 되어도, 모두가 두릅을 보며 봄의 향기, 봄의 맛을 운운할 때도 나는 애써 외면했다. 그렇게 16년을 지내다 며칠 전, 신랑이랑 밤길을 걷는데 두릅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아닌가. "친구 ㅇㅇ이네 두릅 판다는데 살까?" "나 두릅 안 먹는데... 사실은..." 내가 두릅을 안 먹는 이유에 대해서 말했다. "와 그랬는고? 그냥 먹지, 내 같으면 그냥 먹겠다." "먹으라고 안 하는데 어찌 먹냐? 나는 못그란다." 그랬더니 다음날 친구ㅇㅇ 에게 두릅을 7만 워너 치나 샀다고 했다. "7만 원? 왜케 많이 샀노?" "내가 먹는 걸로 그러는 거 안 좋아하는 거 알제? 실컷 먹으라고, 똥에서 두릅 냄새날 때까지 실컷 먹어라."라며 나를 두둔했다.
두릅을 데쳐서 상에 올렸다.
신랑은 조심스레 두릅을 들어 초장에 잎을 담그더니 내입으로 연신 집어넣는다. 임신해서 먹고 싶은 것도 못 먹고 슬퍼했다고 하니 애가 쓰였던 모양이다. 먹고 있는데도 계속 입에 넣어주자 애들은 닭살 돋는다는 표정과 눈빛을 보내며 웃는다. "효수 임신했을 때 엄마가... 그랬단다...."라며 내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아빠의 닭살행각이 이해된 건지 아이들은 야유를 보내며 웃는다.
이제는 아프지 않다. 신랑이 내 맘을 알아줬으니까. 지금은 그때 못 먹었던, 16년간 못 먹었던 두릅을 배부르게 먹고 있다. 조만간 두릅튀김을 한번 해볼까 싶다. 16년 전, 두릅튀김이 먹고 싶어 냉장고 근처를 서성이던 나에게 선물해주고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