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월 12일. 올해 들어 첫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신랑이 일을 쉬면 우리 가족도 함께 방학에 들어간다. 동절기라 땅이 얼어서 일이 안되다 보니 시간적 여유가 많아진다. 덕분에 우리도 콧구멍에 바람을 넣을 수 있으니 신랑의 쉼이 꼭 나쁘지만은 않다.
둘레길이 아름답기 때문에 꼭 가보고 싶은 곳이 있다 했다. 신랑은 여행밴드에 가입이 되어있는데 눈여겨봤다가 한 군데씩 도장 깨기 하듯 우리를 데리고 다녀준다. 혼자가 아닌 함께를 지향해 주는 신랑에게 항상 고마울 따름이다.
우리는 경남 창원에 있는 '실리도'로 향했다. 배도 타야 된다는 말에 엉덩이가 들썩거렸다. 이럴 때 보면 여전히 내 안엔 10살 소녀가 살고 있는 것 같다.
내비게이션에 원전선착장을 검색해 출발했다. 배시간을 맞춰야 돼서 열심히 달렸다. 화장실 가는 시간도 아끼기 위해 김해에 있는 졸음쉼터 한 군데만 들렀다가 내리 달렸다. 배시간에 못 맞추면 3시간을 기다려야 돼서 그냥 집으로 돌아와야 된다는 말에 운전하는 내내 대화에 낄 여유도 없이 운전에만 집중했다. 선착장에 다 와갈수록 내비게이션에 남은 시간에 꽂혀 시선이 왔다 갔다 했다. 다행히 10분 전에 도착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는데 선착장도 안 보이고 매표소가 없다?
내비게이션이 잘못됐나 재차 확인했지만 제대로 왔음에도 불구하고 왠지 허전했다. 신랑이 먼저 내려 알아보러 갔다. 그 시간이 5분도 채 안 됐는데 50분같이 느껴졌다. 배를 못 탈까 봐 어찌나 맘 졸였던지 그때만 떠올리면 심장이 쫄깃해진다.
원전선착장에서 실리도들어가는 배, 뒤로보이는 실리도
그곳에서 조금 항구로 들어가니 선착장은 있었지만 매표소가 없었다. 일하고 계신 분께 여쭤보니 현금으로 뱃삯을 드리는 거였다. 배는 정말 많이 탔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신랑도 나도 당황했다.
잠시 후 배가 도착했다. 둘째 아이가 좋아하는 통통배였다. 배시간표는 실리도에서 출발하는 시간표여서 5분 정도 뒤에 출발했다. 다행히 실리도에 입성할 수 있게 되어 맘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실리도까지는 배로 5분 정도거리였다. 잠깐 구경하다 보니 금세 도착했다. 성인 2000원, 소인 1000원이 뱃삯인데 왕복으로 16,000원을 드리고 내렸다. 나가는 배시간까지 시간이 많으니 혹시 빨리 나가고 싶으면 2,000원만 더 주면 원할 때 선착장까지 태워주신다 했다. (편도 10,000원이면 원하는 시간에 나갈 수 있다는 게 팁!) '이런 경우도 있구나!' 선장님이 친절하셔서 실리도와의 만남이 더욱 반갑고 설레었다.
같이 배를 타고 온 주민할머님께 둘레길을 물었고 할머니댁 앞으로 지나가라고 자세히 알려주셨다.
골목이 끝나자마자 언덕이 기다리고 있었고 단숨에 올라 언덕에서 뒤를 돌아보았다. 캬~~ 경치에 잠시 넋을 잃고 두 눈에 풍경을 고이고이 담았다.
나무데크로 된 둘레길이 너무 이뻤다. 언덕을 올라 걷다 보니 드넓은 바다가 나를 반겼고 이내 시선을 빼앗겼다. 가는 것도 잊고 사진을 찍고 바다를 보느라 넋이 나갔다.
이렇게 고요할 수가!! 백색소음마저도 잠들어 있는 섬이었다. 10분쯤 걸었을까? 섬 끝 부분쯤 풍경 감상하기 좋은 곳에 쉼터가 나왔다. 우리는 그곳에서 준비해 온 점심을 먹고 제대로 경치를 즐겼다. 한 번씩 울어대는 갈매기울음소리도, 잔잔히 철썩대는 파도소리도, 끝이 안 보이는 넓은 바다도 모두가 예술이었다. 지금까지 다녔던 섬들 중에 가장 고요하다며 쉬기에 좋은, 최고의 동네라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욕심을 내자면 이곳에 와서 살고 싶다고까지 말했으니까. '혼자서 글쓰기 딱 좋겠다.' 잠시지만 나 홀로 행복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도 했다.
드론을 챙겨 온 아들이 드론을 띄어 섬을 한 바퀴 미리 돌아봤다. 걷기에 충분한 거리임을 확인하고 천천히 걸음에 나를 맡겼다. 더 어린아이들도 충분히 걸을 수 있겠다 싶은 쉬운 둘레길이었다. 풍경에 발이 잡혀 한참을 서다 가다를 반복했다. 가다가 고라니도 만났고 불가사리와 홍합도 보았다. 밥 먹고 한 바퀴 돌고 나니 한 시간 반정도 흘러있었다. 실리도 복지회관 앞 정자에서 소포장된 과자 한 봉지를 먹고 한숨 돌리고 나서 우리는 실리도와 마지막인사를 나눴다. 콜택시처럼 선장님을 부르고 유유히 실리도를 빠져나왔다.
2시간 운전해 온 게 아깝지 않을 만큼 실리도에서의 한 시간 반은 나에게 따뜻함, 포근함, 행복감, 설렘등 많은 감정들을 선물했다.
'알쓸인잡'이라는 프로그램에서 김영하작가님이 말씀하신 이야기가 떠오른다. 부모와 아이들이 여행을 많이 가야 하는 이유를 말씀해 주셨다.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좋은 곳에 가는 걸 이렇게 말해요. 애들은 다 까먹을 텐데, 왜 좋은데 데려가려 하냐. 근데 거기에 가장 좋은 답은 좋은 감정은 남는다는 거지. 부모와 함께 바다를 갔고 바다에 대한 좋은 감정은 남아서, 구체적으로 어느 해수욕장에서 무엇을 먹었는지 잊어버려도 나중에 바다에 가면 굉장히 편안하고 따뜻한 감정이 들듯이..."
내가 오늘 받은 느낌과 오만가지 감정들이 아이들에게도 오롯이 전달되어 행복한 아이들로 자랐으면 참으로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