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은 고등학생이 되고 동아리활동을 시작했다. 나는 기능생을 하기 원했지만 그리되면 6명이 한 방을 쓰는 기숙사를 써야 되는데 그건 싫다고 했다. 한다고 하면 데리러 가겠다는 내 제안에도 아들은 끄떡없었다. 결국 동아리를 선택했다. 처음엔 나도, 아들도 쉽게 생각했다. 동아리라는 이름이 주는 가벼움 때문인지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 여겼다. 주 3일 밤 9시 30분까지 수업이 있었다. 아이디어도 짜고 대회도 나가고, 이런저런 체험으로 재밌는 활동을 한다고 했다. 집에서 그 학교까지 30분은 족히 가야 하는 거리지만 아들이 기숙사생활을 반대했기에 늘 데리러 가야 하는 수고로움이 있었다. 그런 수고로움이야 얼마든지 괜찮았다. 학교를 마치고 와서 컴퓨터, 휴대폰 들고 시간을 때우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했으니까. 그 정도의 수고는 감내할 자신이 있었다.
하루는 불냄새를 풍기며 차에 타길래 동생이
"와~담배 피우고 온 거가? 잘 나간다"
라며 면박을 줬는데 우드버닝을 하고 온 적도 있고, 실습복에 목공풀을 붙이고 온날도 많았다. 손으로 꼼지락 거리는 걸 좋아하는 아들은 밤늦도록 학교에 있어도 나름 뿌듯해했다. 그런 아들을 보며 나도 거들었다.
"지금 네가 보내는 이 시간이 절대 너를 배신하지 않을 거다. 친구들처럼 못 놀고 힘들기도 할 테지만 분명 너의 자산이 될 거야. 힘들어도 네가 선택한 거잖아. 조금만 더 고생해"
이런 말들을 종종 꺼내며 힘내라는 응원을 대신했다.
어제저녁엔 가족끼리 통닭을 먹었다. 아들이 못 먹었었으니 아들몫을 떼어다가 데리러 가서 건네주었다.
처음엔 급식이 안돼 도시락을 늘 준비해서 갔는데 9월부터 저녁급식도 가능해져서 그 시간에 데리러 갈 때 많이 수월해졌다. 저녁을 학교에서 먹기 때문에 과일정도만 챙겨갔는데 어제는 통닭을 가져갔더니 신나게 먹는 게 아닌가.
그 모습을 앞자리에 앉아있던 여동생이 보더니
"아이고 우리 승이, 왜 그렇게 먹어, 마음이 애처롭네."
오빠가 뒷자리에 앉아 통을 들고 닭 뜯는 모습을 보더니 애처롭다는 말을 쓰는 게 아닌가.
룸미러로 봤더니 고개 숙여 닭을 뜯는 아들의 정수리만 보였다. 나도 애잔함이 가득 몰려왔지만 어쩔 수 없으니 운전대만 고쳐 잡았다.
힘들고 어렵고 배고프겠지만 이 시간들이 분명 아이를 성장시켜 줄 거라 믿는다.
'이 시간도 지나면 추억이 될 테지, 조금만 더 힘내. 아들. 너는 분명 너의 자리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낼 거야. 파이팅!!'
운전대를 잡고 아이를 응원하고 축복했다. 아직 2년 넘게 이렇게 주 3일, 혹은 주 4일을 다녀야 하지만 아들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할 수 있다.
나는 엄마니까.
"너의 모든 것을 응원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