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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주 Sep 21. 2024

판도라의 상자

끄집어내고 끄집어냈다.
공저프로젝트의 주제는 가족이었다. 어렴풋한 추억을 되살리며 글을 써 내려갔다. 여동생에 대한 이야기를 썼는데 우리 참 어렵고 고불고불한 길을 왔구나 싶어 마음 한 곳이 아려왔다.

글을 제출하고 이틀 만에 작가님의 피드백이 돌아왔다. 어찌 그리 콕콕 집어주시는지, 족집게강사라고 하고 싶을 만큼 부족한 부분을 끄집어 내주셨다.
'아, 그렇겠다. 나야 자초지종을 알고 있지만 내가 얘기하지 않으면 모르시겠네, 아! 중복표현 맞네, 이런~'
나름 완벽하다고 제출했던 글에 허점이 드러나니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글을 쓰면서 과거를 회상하는 일, 좋은 일만 있는 게 아니라서 꺼려했다. 좋음도 싫음도 모두 끄집어내어 퍼즐조각 맞추듯 이렇게도 써보고, 저렇게도 쓰면서 아름다운 완성작을 위해 집중해야 하니 엄두를 내지 못했다. 내가 원하던 주제는 아니었지만 공통주제를 찾다 보니 가족이라는 주제가 정해졌다. 1인당 4편의 글을 써야 한다. 엄마, 아버지 이야기를 쓰려고 마음먹었다가도 다시 멈칫하게 된다.
'뭐  좋은 내용만 쓰면 되지' 하다가도 식상해질까 봐, 맛없는 요리 같아 보일까 봐 선뜻 자신이 서질 않는다. 월요일이 되면 또 과제가 주어질 텐데 벌써부터 겁이 난다. 과거를 회상하는 것, 좋은 기억은 한없이 행복하지만 아픈 기억을 소환한다는 건 너무 아프다. 그럼에도 써야 한다면 당당히 마주해야겠지만 쉽사리 용기가 나질 않는다.
'무엇이 날 이렇게 작게 만드는 걸까? 무엇이 그리 아플까 봐 미리 겁내는 걸까?'
다음 주, 과거와 당당히 마주하려 한다. 내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과거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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