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등산화가 픽픽 돌아가더라고, 그래서 힘주고 걸어서 그런가 종아리에 알 배겼다. 일하는데 왜 아프지 왜 아프지 했는데 이유는 그것뿐이다."
등산하고 다음날인 어제, 종아리는 내 종아리가 아니었다. 쭈그리고 앉았다 일어날 때마다 신음이 흘러나왔다.
'이거 왜 이러지'
일하는 내내 생각했다. 이유가 없었다. 아무리 산을 타도 종아리에 알이 배긴 적은 없었으니까. 등산화를 신고 걷는데 뒤꿈치가 움직여지는 게 느껴졌다. 그때부터 용을 쓰며 걸었다. 등산화 끈도 일부러 더 꽉 조이기를 반복했다. 용을 쓰며 한 등산의 대가는 참으로 혹독했다. 등산하고 집에 오던 길, 자주 가는 아웃도어집으로 향했었지만 명절이라 문이 닫혀있었다. 아쉬움에 발길을 돌렸지만 다음날인 어제, 신랑이 아웃도어점을 다시 데리고 갔다. 내가 일찍 퇴근하는 날이라 쇼핑할 시간도 넉넉했다. 나보다 쇼핑을 좋아하는 신랑은 내 옷부터 골라주기 시작했다. 이것저것 갖다 내밀며 입어보라고 권했다. 귀찮기도 했지만 마음이 고마워 입었다 벗었다를 수십 번 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입고 나와보라며 핏까지 봐주는 친절을 베풀었다. 나는 순순히 신랑말에 따랐고 결국엔 한아름을 안고 계산대로 향했다.
"잠시만요, 등산화도 좀 볼게요"
"네, 천천히 보시고 필요하면 불러주세요."
그때부터 등산화를 스캔하더니 몇 가지를 간추려 나의 의사를 묻기 시작했다.
"가벼운 게 좋은데...."
"너는 가벼운 게 좋을지 모르겠는데 높은 산이나 오래 걸으려면 약간 무거운 게 더 나을 수도 있다."
얼마나 데리고 다니려고 그러는가 싶다가도 일단은 편한 신발을 찾고 싶었다. 내 발볼이 넓은 걸 아는 신랑은 4가지를 추천했고, 처음 신었던 전통등산화 디자인으로 선택했다. 발목이 높은 건 처음이었지만 발도 편하고 생각보다 가벼웠다. 내 거라는 확신이 팍 들었다. 사장님도 뒤늦게 오셔서 이런저런 설명을 해주셨다. 내 의사가 중요했던 신랑은 내 선택을 존중해 줬다. 그렇게 등산화를 선물 받았다. 고가의 신발을 선물 받으니 좋으면서도 걱정이 앞선다.
"선선해지면 등산이나 트레킹 하며 건강 챙기자"
라던 신랑의 말이 귓가를 맴돈다. 운동도 좋지만 등린이인 내가 잘 따라다닐 수 있을지, 혹여 신발값을 못할까 봐 염려도 됐다. 사람들 다 하는 거니까 잘은 못하더라도 한번 해보자며 의지를 다져본다. 사온 등산화를 다시 신어보니 염려가 조금씩 사라진다. 신발을 사온날 너무 기뻐 머리맡에 두고 자던 옛 추억도 새록새록 피어난다. 부부가 함께 하기 위해 등산화선물을 받은 건 처음이라 들뜨기도 한다. 그저 좋은 생각만으로 가을을 맞이하고 싶다. 이 등산화와 좋은 추억, 좋은 기억만 새기며 누비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