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내 마음의 한쪽을 간신히 내어줬는데 이럴 수는 없다. 가족으로 받아들인 지 겨우 10일 차다. 마음 한쪽을 내어주기까지 헤아릴 수 없는 많은 고뇌와 책임감의 무게로 짓눌려 있었는데 출산이라니.
"엄마, 햄스터가 꽉 물지는 않는데 계속 물어" 며칠 전 딸아이의 이야기에 순하다던 가게아저씨의 이야기가 거짓부렁인지 의심되기 시작했다.
"얘들아, 밥 조금만 줘. 무슨 햄스터가 포복자세로 걸어 다니냐?" 이틀 전 신랑의 말에 단시간에 저리 뱃살이 늘어날 수 있는가 의아하기도 했다.
"엄마, 햄스터집에 분홍색 뭔가가 꾸물거려요"
설마 설마를 맘속으로 되네이며 햄스터집을 째려봤다. 그러나 아무것도 안 보인다. 실룩거리는 햄스터의 달덩이 같은 뒤태만 보일뿐.
"아니야, 안 보이는데? 잘못본거겠지~" 딸이 본 게 잘못 본 것이길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나의 기도는 순식간에 땅으로 떨어져 버렸다.
"엄마!!!!!!!" 상당히 들뜬 딸아이의 비명 같은 부름에 부리나케 달려갔다. '오 마이갓'
내 새끼손가락보다 작은 핑크색 생물체가 꼬물거리며 집밖으로 튕겨져 나와있다. 분명 어제까지 같이 놀았고 아무것도 없었다는 둘째의 말에 오늘이 출산일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생각을 모아보니 이제야 알 것 같다. 은근히 해대던 입질, 집밖으로 담처럼 쌓아둔 신문조각들, 풍선같이 부풀어 끌고 다니던 배, 그 모든 게 '나 임신했소. 건들지 마시오.'라고 온몸으로 표현해 댔다는 걸 말이다.
걱정이 눈덩이처럼 커지기 시작했다. '어디서부터 챙겨야 되지? 뭘 해야 되지? 어떡해.'
초록창에 '햄스터출산'을 검색했다. 맨 처음 뜨는 창을 보고 기겁을 했다.
햄스터는 1년 내내 임신 가능한 동물로 약 4일마다 발정기가 오는데 임신이 됐을 경우 골든햄스터는 16~18일 정도, 드워프햄스터는 18~20일 정도 임신기간을 가집니다.
'맙소사, 임신한 햄스터를 사 왔을 줄이야.'
신랑이 첫 손으로 암컷을 골랐을 때만 해도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본인도 놀란다.
"골라도 어찌 이리 골랐을꼬, 왠지 젖꼭지가 선명해져서 딱 보이더라, 살다 살다 햄스터키우며 새끼 낳는 건 처음 본다"며.
덕분에 저녁 내내 햄스터공부를 했다. '어둡게 해 줘라. 손대지 말아라. 출산하고 나면 영양식도 준다. 냄새가 나더라도 최소 3주는 들여다보지 마라. 새끼들이 알아서 기어 나오면 그때부터 이유식을 먹이면 된다. 영양제를 챙겨라. 크면 분리시켜 키워야 한다.'
육아를 다시 시작하는 느낌이다. 햄스터용품으로 유명한 사이트에 가입을 하고 주섬주섬 하나씩 장바구니에 담는다. '벌써 3만 원이 훌쩍 넘는구나.' 혼란스러운 정신을 가다듬고 출산용품, 영양제, 이유식 등 장바구니를 가득 채워본다. 아이 출산준비물을 준비할 때의 감정들과 비슷한 무언가가 느껴진다. ' 말 못 하는 짐승이고 우리 가족도 되었는데 챙겨야 안 되겠나. 누가 챙기겠나, 내가 챙겨야지.'
친정단체톡에 햄스터의 출산을 알렸다. 심란했던 나의 마음에 긍정적인 동생의 답변은 잔잔함과 희망을 선물했다. 무슨 일이든 생각하기 나름이라더니, 동생에게 또 한 수 배운다.
적어도 2주간은 누룽지(햄스터이름) 그녀를 위해 철통보안과 아늑함을 주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새 생명이 얼마나 되는지 모른다. 집 밖을 탈출한 아이 하나, 젖 물고 대롱대롱 달려있던 아이 하나, 이렇게 아는 것만 2마리다. 한번 출산 시 4~6마리, 많게는 20마리까지 낳을 수 있다니 대단한 출산드라다. 햄스터가 자궁이 2개라 한 달 간격으로 출산이 가능하다는데 또 출산하진 않겠지? 제발 더는 아니하길, 이번에도 나의 기도가 땅에 떨어지지 않길 간절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