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으로 만들고 가슴으로 사유하기

색동조끼를 만들다

by 박현주

"조끼 한번 만들어봐~어렵지 않잖아"
"어렵진 않은데... 알겠어요. 해볼게요. 한번 해보고 싶긴 했어요."

겨울 초입부터 친한 언니의 권유가 있었다.
언젠가 해보고 싶던 숙제 같은 일이었다. 시작을 종잡을 수 없던 숙제를 오늘에서야 결국 해냈다.
참 잘했어요 도장을 받고 싶은 숙제검사받는 아이의 심정이었다.





바느질로 만드는 것 중에 본을 뜨는 일이 반이라고 할 만큼 본을 그려내는 게 가장 큰 과제다. 옷을 만들거나 소품을 만들어 보신 분은 알 것이다. 바느질은 그다음문제라는 것을.
패턴(도안)을 그리는 것을 전문적으로 배웠던 게 아니라서 대부분 본뜰 수 있는 샘플을 받아오던지, 옷을 만들 수 있게 그려진 도안을 구매해서 시작한다.
처음에는 비전문가라는 자격지심에 괴롭고 힘들기도 했지만 나는 서서히 이겨 나갔다.
모로 가든 도로가든 서울만 가면 된다 하지 않나.
나는 나만의 터벅 걸음으로 서울에 도착했다. 물론 조금씩 나의 식으로 변경도 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먼저 만드신 분에 대한 예의였고 나만의 색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만의 색? 이 네 글자가 나를 얼마나 비참하게 무너트리고 짓밟았는지 모른다.
공예 쪽에서 나만의 색을 나타낸다는 건 작가의 고유성, 나의 또 다른 명함이자 나의 심벌이고 간판이 되는 것이다. 작품만 봐도 누구의 것인지 알아차릴 수 있다는 건 작가에게 최고의 선물을 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미숙했던 나는 나의 색을 못 찾아 헤매기도 했고, 누구나 만드는 것을 똑같이 만든다는 건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한발, 한발 좁은 보폭으로 걷다 보니 남들과 비교도 하게 되고 그러다가 작아진 마음 탓에 뒷걸음치기도 했다.
후퇴한 적은 있지만 포기하지는 않았다. 힘들어지면 모든 걸 놓고 쉬어갔다. 나를 닦달하는 나 자신이 미웠고 야속했기에 나의 달음박질을 잠시라도 멈추게 해야 했다.
한숨 쉬고 나서야 서서히 발걸음을 떼었다. 나만의 보폭으로 살금살금 걸어 나갔다.
다시금 비교를 하려 하면 평소 내가 만들고 싶었던 것을 만들며 분위기와 기분을 전환시켰다. 그렇게 하기까지는 6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나는 나에게 참으로 인색했다. 그러지 않고서 6년간 매번 씨름하며 어떻게 지내왔을까. 생각만 해도 치가 떨린다.

이제는 과거에 얽매이지도, 못 배워가졌던 자격지심도 지나가는 개에게 던져줘 버려 남아있는 게 없다.
나만의 속도로, 내가 좋아하는 것을 만들어가며 사는 지금이 행복하다.
해보고 싶었던 숙제들을 이제야 하나씩 해나가고 있다.
작품 아이디어를 내 특허청에도 도전장을 던져봤다. 물론 고배도 마셨지만 그런들 어떠하나.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고, 도전하고 있다는 사실이 힘들지도, 지치지도 않게 해 준다.





색동조끼이자 양면조끼를 다 만들고 나서 다림질을 시작했다. 바느질을 한 시간만큼, 아니 그보다 더 오래 했다.
상침이라고 하는 만들고 나서 테두리를 박아주는 작업이 있는데 이 조끼는 하지 않았다.
봉제선이 보이는 것보다 안 보이는 게 더 깔끔해 보이기도 하고, 부탁한 언니도 그걸 더 선호했기 때문에 다림질에 충성을 다했다. 한쪽은 누빔원단이고 한쪽은 다림질 온도에 민감한 폴리에스터 원단이라 신경을 곤두세우며 조끼를 완성시켰다.

바느질을 했을 때 가장 좋았던 것 중 하나가 그냥 원단일 때는 천 쪼가리에 불과하지만 내손으로 생명을 불어넣어 용도라는 걸 선물했고, 그 용도로 인해 쓰임 받는 물건으로 탄생시켰다는 사실은 내가 마치 큰일을 해낸 것처럼 여겨졌다.

오늘도 본을 뜨고 원단에 옮겨 그리고, 자르고, 시침바늘을 꽂고 바느질까지 하는 많은 순간, 많은 손길을 통해 누군가에게 필요한 옷이 탄생했다.
"그거 별거 아니네, 쉽잖아."
라고 하실 수도 있다. 온몸에 실자락들을 붙여가며 바느질을 했고 다림질에 온 힘을 쏟으며 정성을 다했다. 무엇보다 나의 제품에는 사랑과 축복도 듬뿍 쏟아붓는다.
가서 사랑받고 이쁨 받으라고, 너의 자리에서 빛을 발하라고 늘 축복하고 떠나보낸다.
그리 떠나간 나의 작품들은 기도 때문인지, 나의 솜씨 때문인지 알 수는 없지만 다들 이뻐해 주시고 애정해 주신다. 나의 축복은 잘 쓰고 있다는 최고의 말로 기쁨이 되어 돌아온다. 그때야말로 일하던 중 가장 뿌듯하고 가슴 벅찬 순간이다. 이 맛에 바느질을 놓지 않고 계속하게 되는가 보다.





조끼하나 만든 게 다인데 녹초가 되어버렸다. 열과 성을 다하고 하니 진이 다 빠져버렸지만 마음만은 날아갈 것 같다.
지인이 내준 숙제도 해결했고, 내가 하고 싶었던 리스트도 한 가지 해내게 되어 뿌듯하다.

나는 오늘 작은 언덕 하나를 넘었다. 색동원단의 한 줄기 원색들처럼 내 앞에 예비된 언덕들도 줄줄이 있겠지만 두려워하지 않고 요령껏 잘 넘어가 보려 한다.
나는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충분히 잘 넘어갈 수 있을 거라 믿는다.

물건을 만들 때 가졌던 열정과 정성을 봇짐 삼아 메고 내일도 언덕을 넘으려 한다. 부디 언덕을 넘을 때 콧노래 부르며 넘을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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