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소중하고 귀한 내 삶의 주연이다

버선모양책갈피 만들기

by 박현주

바느질로 무언가를 만들고 나면 꼭 남는 원단이 있다. 남은 원단을 어찌 처리해야 할까 늘 고민하기도 하지만 금세 해결 짓곤 한다. 고민이 깊어지기도 전에 남는 원단이 보이면 버리기 아까워 애지중지 모으고 또 모은다.

또 다른 무엇인가 만들 수 있을 거란 기대감과 설렘이 마음속 저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기도 하고 또 다른 무언가를 만들 수 있는데 버려지는 게 안타깝다는 생각에 아끼고 있다. 아끼면 똥 된다는 말도 지금의 나에게는 먹히지 않는다.
지금도 쌓여만 가는 자투리원단을 보고도 못 본 척, 계속 쌓아가고 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오늘은 여느 때와 달랐다.
자투리원단을 소생시켜 보겠노라 다짐했고 부지런히 손을 움직였다.
조끼를 만들고 나서 누빔원단 4조각이 남았다.

'한번 만들어봐?'
몇 달 전부터 뇌리에 박혀 곤히 잠들어 있던 버선모양책갈피를 만들어 보고 싶어졌다. 누빔원단은 한국적인 특색 있는 소품이나 옷을 만들면 잘 어울릴 뿐만 아니라 아름답기 때문에 버선도 꽤 매력적일 거라 확신했다.
버선을 만들기엔 원단이 애법 조각나있어서 미니 하게 만들기로 마음먹고 본을 그리기 시작했다.
뜬 본을 원단에 옮겨 그리고 박기를 이어갔다. 책갈피로 쓸거라 오색줄도 넣어줬다. 원색줄보다 아무래도 한국적인 냄새가 물씬 풍겨날 것 같아서 선택했다. 만들고 나니 탁월한 선택이었다 싶다.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버선코에 미니테슬을 달아서 멋을 강조했고 화목(발목) 부분에 자수실로 리본포인트를 주었다.

줄의 끝부분을 어떻게 마무리 지을지 며칠간 엄청난 고민을 했다. 감사하게도 좋은 생각이 번뜩였다. 지나가던 아이디어를 놓칠까 싶어서 순식간에 낚아챘다. 예전 배웠던 전통매듭 중 가장 기본인 도래매듭을 만들어 우드볼을 양쪽에서 잡아주었다.

여기서 끝나면 아쉽겠지. 버선을 앞, 뒤로 꾹꾹 눌러 다림질해 주었다.
드디어 완성했다. 곱고 아리따운 버선의 자태를 마주하니 눈이 행복해졌다.


직접만든 버선책갈피


가만히 뒀으면 아무 의미 없는 원단조각 나부랭이에 지나지 않았을 텐데 용기를 냈고 움직였더니 새로운 의미를 지닌 아이로 탄생했다.

삶을 사는 것도 바느질과 다를 게 없다.
가만히 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처럼 움직였기에 생각만 갖고 있던 아이디어를 끄집어낼 수 있었고 그 이유에 귀하고 의미 있는 무언가를 탄생시켰다.

작은 소품에 불과하지만 각자 나름대로의 자리가 있고 역할이 있다. 책갈피가 할 일을 국자가 대신해 줄 수 없듯이 누가 뭐래도 책갈피는 본인의 자리에서 주연이다.
크기도, 모양도 제각기 다르고 볼품없을 수도 있지만 모두가 자기 자리에서만큼은 주연이다.
남과 비교해 작거나 볼품없다고 의기소침해할 필요도 없다. 나는 그 무엇과도 대체불가한 유일무이한 존재니까.

화려한 드레스보다 보잘것없고, 반짝이는 유리구두만큼 빛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책하고 있을 때만큼은 책갈피가 중요하고 필요하듯이 내가 보잘것없고 나약해 보여도 내 자리를 대신해 나와 똑같이 살아 줄 수 있는 사람은 없지 않나.

절대 비교하지 말고 좌절하지 말자. 내 인생에서 만큼은 조연이 아닌 주연으로 살자.
겉모습이 전부가 아니듯이 내 역량껏, 나와 맞게,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면 나는 분명 훌륭히, 잘살고 있는 것이다.

나는 책갈피 같은 내 삶이 좋다.
누군가에겐 작고 초라해 보일 수 있다. 버려질 수도 있었던 위태한 인생이었지만 움직였고 나름대로 만들어가다 보니 의미 있는 인생이 되었다.
바느질을 했고 글을 쓰고 있는 내게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그저 행복할 뿐이다.

나의 모습이 조연이나 단역으로 보일지 모른다. 그리 보일지라도 나는 소중하고 귀한 내 삶에 주연이다. 나부터라도 나를 좋아하고 응원해 준다면 나의 인생은 성공을 향해 거뜬히 달려갈 수 있을 테고 쓸모 있는 사람이 될 것이다.


욕은 하지 말자. 책갈피도 자기 자리에서 온몸으로 용쓰며 버티고 있을지 모르니까. 책의 무게를 나름대로 꿋꿋이 이겨내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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