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그거였어

삶의 본질과 사명

by 박현주

'삶의 본질을 나는 어떻게 정의하지? 나의 사명은 또 뭘까?'

특강수업을 다녀온 이후 생각이 많아졌다.
내가 글을 쓰려는 이유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점검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나는 내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듣는 것을 좋아하고, 직업의 영향도 있던 터라 듣는 것에 이골이 나 있는 사람이었다.
밝은 사람을 정말 많이 만났다. 나는 우울해 보이는 사람보다 밝은 에너지가 넘치고 함께 있으면 웃게 되는 사람들 곁을 좋아했다. 같이 있는데 기운 빠지게 한다? 죄송하게도 그런 분께 먼저 보자고 연락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무슨 이유에서 일까? 밝은 분들 중에서도 겉으론 밝게 웃고 있지만 안으론 곪을 대로 곪아 있는 분들이 애법 계셨다.
남모를 비밀이나 아픔이 꼭 있었다. 그 아픔과 고통을 웃음으로 승화시키려는 듯 보였고 몸속에 숨어 기생하는 기생충처럼 꼭꼭 숨겨놓고 함께 살고 있는 분들이 너무 많았다. 그런 분들에게 힘이 되어 주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마음은 늘 가득했지만 할 수 있는 거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말주변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타고난 극소심형 I라 말로 할 수 있는 일은 더더욱 없었다.





어릴 적부터 말할 용기가 없으면 종이와 연필의 힘을 빌려 내 마음을 전할 때가 많았다. 연애 때도 편지로 내 마음을 수시로 전했다. 글의 힘을 어릴 적부터 알고 있었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글로 마음을 표현하는 것뿐이었다. 그게 내가 글을 쓰고 책을 쓰고 싶은 이유의 시발점이 되어주었다. 글쓰기로 내가 아는 것들, 내가 느낀 것들로 힘들고 괴로운 분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었다. 따뜻한 글로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싶었다. 어쩌면 그 글이 나에게 전하고 싶은 위로였는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내가 믿는 신께 간절히 기도했던 적이 있다. 돌이켜보니 신은 나를 너무도 잘 알고 계셨다.

책으로도, 사람으로도 나에게 메시지를 마구마구 던져주셨는데 눈치가 밥통이라 못 알아채니 영상으로 정확하게 응답해 주셨다.

역시나!! 내가 단순하다는 걸 정확히 아시는 주님이었다.
'저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답을 주세요, 그럼 목숨까지는 안 되겠지만 최선을 다해 따를게요.'
응답을 듣기 위해 두어 달 엄청 매달린 것 같다.

어느 날, 어느 교회 사모님께서 방송에 나오셔서 그러셨다.
"사명이라고 해서 대단하게 무엇을 해야 하는 것 만이 사명이 아니에요. 내 자리에서 내게 주어진 일을 해내는 것도 사명이에요. 엄마라면 아이들을 사랑으로 잘 키워나가는 게 그게 사명이에요..."

이후 말씀을 더하셨지만 뒷이야기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누군가가 뒤통수를 한대 갈긴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금의 내 자리? 두 아이의 엄마, 아내, 맏며느리, 맏딸, 작디작은 바느질사업가, 이것도 벅찬데 뭘 바랐던 거지?'


쫓지 못할 허상에 발목이 잡혀 정작 눈앞에 있는 제일 중요한 것들은 놓치고 있었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욕심만 가득한 속물 같았던 나 자신에게 부끄러워졌다.

문어발로 펼쳐놓은 취미가 문어발이 되어 나의 하루하루를 옭아매고 있었고 허공을 맴돌던 시선을 제자리로 돌려야만 했다. 끝없는 욕심으로 나를 괴롭히고 있었고 본질은 잊고 허상에 목을 매고 있었던 내 모습을 그제야 직시하게 되었다.

'아, 쪽팔려, 도대체 뭐 하고 있는 거니?'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나는 경주마가 되었다. 발주악벽을 막기 위해 눈을 가리듯 나의 시선을 보아야 할 곳에만 두었더니 오히려 편안해졌다.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게 사명이었어.'

헛군데 삽질해 댔던 시간들이 후회와 반성으로 가득해졌다.


사명은 찾는 게 아니라 알아차림이 아닐까?

이제 나는 나의 자리에서, 내게 주어진 숙제들을 하나씩 하나씩, 씩씩하게 해 나가야겠다.


나에게 주어진 사명을 위해, 오늘도 주방을 진두지휘하기 위해 몸을 일으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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