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퀘스트 성공!!

전선 묶기

by 박현주

촌에 살다 보면 생각보다 많은 일을 해야 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고난도는 잡초 뽑기다. 며칠뒤면 언제 뽑기라도 했냐는 듯 다시 빼꼼하게 고개를 드는 잡초를 보면 농약을 사정없이 쏴주고 싶어 진다.

그것 말고도 농작물 심기, 물 주기, 농작물 수확하기, 농작물 키운 밭에 비닐 걷어내기 등 표 안 나는 잔잔바리 일들이 즐비하다.

오늘 하게 된 일도 마당을 지나는 전선정리였다.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서슴없이 일어나는 게 시골살이의 쓸데없는 묘미다.

전원생활을 꿈꾸는 사람들이 많지만 각오해야 할 부분도 있다.
우리 동네만 해도 잡초가 싫어서, 흙먼지가 싫어서 시멘트로 마당을 덮어놓은 집들이 꽤 있다. 그런 집은 여름이 되면 흙땅일 때보다 더 뜨끈 뜨근하다.
흙땅에 살며 잡초를 뽑든, 지열보다 심한 시멘트열을 안고 살든 모두가 개인 선택이고 취향이지만 우리는 흙이 날리면 물을 뿌릴지언정 시멘트는 지양하고 있다.

그런 흙마당에서 흙을 날리며 공놀이하던 아이들이 일을 만들어줬다. 하하하.






사흘 전, 조카와 딸이 배구놀이를 하다가 마당에 있는 전선을 건드렸고 늘어진 덩굴처럼 축 쳐져 버렸다.
쳐진 전선을 보던 신랑은 나보고 손보라는 이야기를 건넸다.
나는 못한다며 어이없어했고, 해보지도 않고 못한다는 이야기부터 한다고 정색하는 신랑 덕분에 꼭지가 돌뻔했다.

'무서워서 사다리도 못 타는데, 전선은 굵어서 밀대로 들어 올려보아도 꼼짝을 않는데 나보고 하라고?'

같이하자도 아니고 나보고 하라 한다고 중3아들에게 아빠의 만행을 고자질했다.

"이거 엄마가 하겠나? 가능하겠나? 사다리도 못 올라가는데, 아빠 너무하네 진짜."
"나도 안 되겠는데..."

"그쟈~"

아들 앞에서 우는소리로 끙끙 거리며 앓았다.

정말 손도 못 대겠고 어찌할 수 없어 난감했었는데 아들이 나섰다.
나보다 더 겁 많은 아인데, 흔들 다리도 겨우 건너는 쫄보가 엄마를 위해 선뜻 사다리에 올랐다. 잠옷 위에 외투하나 걸치고 씩씩하게 올랐다.

내가 우는 소리를 해대서 듣기 싫었던 건지, 아님 나를 위한 마음이었는지 알 수는 없었다.
이유가 어떠했는지는 모르지만 나 대신 지붕 위로 올라가 학교에서 배웠다는 매듭법으로 전선도 당겨 묶고 케이블타이로 전선 정리까지 해주었다.
어느새 이리커서 어른이 할 일도 대신해 주는지, 어깨는 또 언제 이리 넓어졌는지 든든하다 못해 믿음직스럽기까지 했다.





아들은 자기도 모르게 다리가 떨린다며 사다리 위에서 개다리춤을 추기시작했다.
긴장돼서 근육이 저절로 떨리는 모습을 보니 미안하고 고마워서 콧잔등이 시큰해졌다.
아들은 이 부분에서만큼은 자신보다 엄마를 더 사랑하고 있는 듯했다. 진심 고마웠다.



퇴근하고 온 신랑에게 아들이 한 일을 낱낱이 고했다. 아들의 다리가 사시나무 떨리듯 떨렸던 이야기를 하니 이해한다는 듯 웃음을 보였다.
신랑은 "누구라도 할 수 있음 하면 되지, 왜 못한다고부터 하느냐"라고 웃으며 이야기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왜 이렇게 억울한 걸까?

나를 강하게 키우는 신랑이 고마우면서도 미웠다.

어쨌든 오늘의 퀘스트는 성공이다.
아들 덕분에 성공을 했고 보상은 내일 저녁상을 국밥으로 받기로 했다. 그걸로 부족하지만 일단은 받고 봐야겠다.

오래 걸리진 않았지만 사다리도, 전깃줄도 늘어져버리니 혼자서는 힘에 겨웠고 아들이 혹여나 떨어질까 봐 맘 졸였던 게 가장 힘들었다.
힘들었지만 아들의 마음을 엿볼 수 있었고 아들의 존재에 더욱 감사했던 시간이었다.
늘 준다고만 생각했는데 나도 모르게 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소중한 시간이기도 했다.


아이는 또 한 뼘 나를 자라게 했다.

'아이가 스승'이란 말을 이럴 때도 쓰겠구나 싶어 감격스러운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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