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글 쓰는 66일간의 별별챌린지가 어제부로 끝이 났고 오늘은 글로 성장연구소에서 진행하는 두 번째 오프모임이 있었다. 목적지는 '서울'이었다. 5년 만인 것 같다. 새마을회에서 주최했던 행사로 서울을 여행했었고 그 이후로는 처음이다.
주말만 쉬는 신랑과 아이들에게 미안했고, 나의 계획을 묵묵히 응원하고 지지해 주는 고마움에 김밥을 말았다. 저녁까지 먹이려고 20줄을 사려고 했으나 과유불급일터, 김밥과 곁들일 라면과 가락국수가 있었기에 욕심부리지 않기로 했다.
서울까지 계획대로 잘 왔다. 이제 기차 타는 게 조금은 덜 걱정스럽다. 기차 타 본 일이 적어서 잘못 탈까 봐 대전모임 때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ktx 열차 안에서 서울역이라고 방송하는 걸 보니 무사히 도착한듯하다. 나도 모르게 안심의 큰 숨이 쉬어졌다.
대합실을 보니 5년 전 왔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피어난다. 남산 왕돈가스를 먹고 급체했던 딸이 고생했던 기억까지 꿈틀거리며 올라온다. 그 기억이 끝이었다. 혹시나 진행 중에 들어가 방해가 될까 봐 뛰었다.
그때까지도 나는 횡단보도를 찾았다. '여기는 길이 넓어서 그런가? 횡단보도도 없노?' 지하철입구를 2개 지나고 나서야 무릎을 치게 된다. '지하차도를 이용해야겠구나, 나 왜 이러노?'
시골쥐가 서울 와서 길을 잃을 뻔했지만 휴대폰이 나를 살렸다. 내비게이션에 도보를 찍어 모임장소 부근까지 갔다. 한 번에 아주 잘.
스탠드형 안내부스를 보고서도 옆집으로 들어갔다. 어두컴컴한 분위기, 수부에 앉아계신 남자분 뒤로 게스트하우스란 글자가 눈에 확 들어왔다. "어~잘못 찾아왔어요. 죄송합니다!" 라며 90도로 인사하고 도망치듯 서둘러 나왔다.
모임장소 옆건물에 들어가 민폐를 끼칠뻔했다.
간판이 없었지만 내비게이션이 '한우생각'이라는 가게옆을 가리켰다. 에라 모르겠다 하고 3층까지 헉헉대며 뛰듯이 올랐다. 2층쯤 오니 리나작가님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지대로 왔네. 이제 됐다. 살았다'
문을 열자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꽂히고 모두가 반가이 맞아주신다. 몸 둘 바를 몰랐지만 반가운 얼굴들에 눈빛으로 인사를 건네고 서둘러 빈자리에 앉았다. 계단을 오르느라 숨이 턱까지 찼지만 서서히 가라앉혔다. 환한 미소로 맞아주시는 은실작가님 옆에 앉게 되었다. 앞에는 현석작가님이 앉아계셨다. 숨이 가라앉을 무렵 자리를 정비했고 그룹으로 나뉘었다. 인사를 나누고 옆사람에 대한 묘사쓰기에 들어갔다.
나는 은실작가님을, 은실작가님은 현석작가님을, 현석작가님이 나를 묘사하는 글을 써 내려갔다.
제일 먼저 현석작가님이 나를 묘사한 글을 발표하셨다. 어찌나 명확하게, 세세히 쓰셨던지 감탄과 감동과 놀라움에 입이 떡 벌어졌다.뿌리염색을 염두하며 살고는 있었지만 그것까지 콕 집어주시다니. 현석 작가님의 눈썰미에 상당히 놀랐다.
은실작가님은 멋진 글에 더불어 현석작가님의 이름으로 삼행시까지, 완벽했다. 나는 묘사를 가장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는 부분이라 은실작가님의 멋진 부분과 빛나는 부분을 혹여나 놓칠까, 모자라게 적게 될까 봐 노심초사하며 적었으나 역시나 내 글은 부족했다. 실로 죄송했다. 묘사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 각오했던 순간이었다.
다른 작가님들의 묘사발표가 끝나고 잠시 쉬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조금씩 깊이 있게 상대를 들여다보게 되었고 제법 가까워진 기분도 들었다.
다시 그룹으로 나뉘어 이번엔 옥제작가님과 같은 조가 되었다. 아이일로 정신없으셨을 텐데도 침착하셨다. 나는 그런 게 잘 안되는데 부럽기도 했고 본받고 싶었다. 이후 많은 대화가 오고 갔다. 비슷한 부분도 많고, 배우고 싶은 건 더 많았다.
이번엔 별별챌린지나 본인이름으로 삼행시 짓기를 했다. 대부분 별별챌린지로 오행시를 지으셨다. 같은 단어지만 어찌 이리 다르게 표현되는지, 재미와 신비로움과 감동까지 비빔밥처럼 다채로운 이야기로 풍성한 시간이었다.
잠시 긴 대화가 이어지고 다음은 마인드맵을 그리기로 했다. 가장 긴 꼬리로 이어진 이야기만 발표를 하기로 하고 열심히 문어다리를 펼쳐나갔다. 다 좋았지만 이 시간이 찐으로 가장 좋았다. 작가님 한 분 한 분께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며 사는 것들에 대해 깊이 듣고 나누는 시간이었다.
이 시간은 글 쓸 때와는 또 다르게, 다른 느낌으로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이었다. 지하작가님께서 마인드맵 작성도중에 눈물이 날 것 같다고 하셨던 말씀의 의미를 그때는 몰랐다.
한분 한분, 이야기를 듣고 깊이 있게 들여다보니 아픔 없는 사람, 슬픔 없는 사람이 없었고 그 시간을 통해 많은 것을 나누고 알게 되어 더욱 끈끈 해진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더 찐하게 그들을 알게 되어서 좋았고, 내가 지고 오던 짐을 나눠드린 게 아닌지 죄송하면서도 공감해 주시던 모습에 감사가 넘쳐났다.
내 인생은 글로 성장연구소를 만나기 전과 후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살려고, 살고 싶어서 바느질을 했고 바느질로 위로를 받고 견뎌냈다. 그 시간을 위로해 주듯 글로 성장연구소를 만났고 글을 쓰며 나를 제대로 살펴보게 되었다. 이제는 바느질뿐만 아니라 글도 나를 살게 해 준다.
발표가 끝나자 별별챌린지를 하고 나서 얻은 소감을 한 단어로 발표했다. 모든 분들에게 별별챌린지는 큰 의미였고 선물이었다. 나 역시 그랬다. 성찰이란 것을 모르며 살아온 시간들을 점점 들여다보기 시작했고 나를 알아차리는 계기가 되었다. 감사했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마지막으로 마니토 선물교환과 단체사진을 찍고 급하게 헤어졌다.
나의 마니또 & 나를 뽑아주신 지혜작가님의 선물♡
올까 말까 망설였던 마음을 반성하게 될 만큼 좋았고, 5시간이 50분 같아 너무 아쉬웠다.
5시간이지만 5일 같은 깊음으로 서로를 알아갔다. '작가님 두 분의 마인드맵은 어땠을까?'
다 끝나고 나니 드는 생각이었다.
곧 보자며 격하게 인사해 주시던 울산 글동무님들♡너무 감사했고 덕분에 행복했다.
6시쯤 되니 톡방이 정신없이 울린다. 서울에 살고 있는 우리 집 막둥이, 내 남동생이 서울역에 와있다는 이야기가 친정식구 단체방에 올라오고 있었다.
마음이 급해졌다. 이로작가님과 마구 달렸다. 이로작가님 없었으면 또 헤매었을게 분명했다. 감사하게도 갈라지는 길에 안내까지 해주셨다. 시골쥐인 나에겐 날개 없는 천사였다.
내 남동생과 함께-기차를 기다리며(친정톡방에 인증)
기차시간은 그나마 여유가 있었지만 동생을 잠깐 만난다는 게 아쉽기만 했다. 연예인 매니저인 남동생, 나이 차이도 많이 나고, 일찍 취업 나온 터라 정작 사춘기시절엔 옆에 있어주지도 못했는데, 어느새 나보다 더 커서 누나라고 보러 온 것을 보니 고맙기도, 짠하기도 했다. 시간이 많아서 따스한 밥 한 끼라도 먹였으면 덜 아쉬웠을 텐데 괜스레 마음 한편이 무겁고 아프다.
오늘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터라 그런가 나도 모르게 새어 나오는 눈물을 꾸역꾸역 삼켜본다. 내 마음 편하고자 지갑에 든 지폐 몇 장을 구겨 넣어주고 기차에 몸을 실었다. 기차가 떠날 때까지 지키고 서있어 준 동생, 고마웠고 반가웠다.
남동생이 찍어준 내가 탄 기차
기차에 올라 이 글을 쓰고 있다. 챌린지는 끝이 났지만 리나작가님의 건드림이 있었기에 나는 글을 놓지 않기로 결심했다. 매일매일 써내려 가볼 참이다. 조만간 다시 66 챌린지가 시작되겠지만 그전까지 나는 꼬박꼬박, 꾸준히 쓸 것이다. 꾸준함이 장점인 신백작가님처럼, 7년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빠짐없이 만보를 걸었다는 은실작가님처럼 꾸준함을 무기로 만들어보려고 한다.
오늘의 5시간은 어느 순간보다 소중하고 값진 선물이었다. 이 시간을 계획하신 리나작가님, 필영작가님께 감사인사를 전하고 싶고 오늘 참석해 주신 작가님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작가님들의 글이 긍정적인 채찍질이 되었다. 글쓰기가 더욱 좋아진다. 더욱 사랑스러워진다.
무엇보다 마지막을 장식했던 두 분의 작가님들 이야기는 내 가슴에 큰 울림을 주셨다.
은실작가님처럼 작은 것으로 기쁨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 졌고, 신백작가님의 운명과 인생을 바꿔준다는 3가지 ㅅㄱ.으로 생각이 많아졌다.
1. 생각
2. 시간
3. 습관
보고, 들은 것으로 그치지 않고 실천하는 삶이 되어야겠다 다짐해 본다.
며칠 전 수채화캘리그래피수업 때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씀이 생각난다. "똑같은 관심사로 만나게 된다는 것은 특별한 일이고 또 다른 행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