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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주 Mar 18. 2023

언제 이만큼 큰 거니?

아들의 자전거 나들이

밖을 비추는 cctv화면 속에서 새어 나오는 빛이 보인다.

아마 누군가가 아빠의 연장창고에 있는가 보다.

퇴근이 늦어진다던  아빠는 아닐 테고, 아들을 찾아보니 기척이 없다.


저녁준비를 마치고 나서 삼선슬리퍼를 질질 끌고 창고로 향해본다.

달빛도 자취를 감춘 듯 어두움이 내려앉아있고 길을 잃었다가 다시 온듯한 겨울의 차가움이 가득한 밤이다.


"뭐 하니? 날도 춥구먼."

"페달 바꾸고 있어요. 내일 자전거도 탈 겸 외할머니댁에 갔다 올게요."


아빠를 닮아서 마음 한번 먹으면 실행하는 추진력하나는 끝내준다. 하고 싶은 건 언제라도 해야 하는 엄빠를 닮았는 걸 보니 내 자식이 분명하다.


걱정된 할머니께서는

"요새 많이 못 탔잖아, 무리하지 말고"

"매일 러닝머신했고요, 학교에서 매일 축구해서 괜찮아요."


아빠도, 할머니도 참아보라는데 한번 먹은 마음이 대쪽 같아 말릴 수가 없다.


아들자전거
손 흔들며 인사하는중


전날밤, 1박 할 짐도 알아서 다 챙기고 블루투스스피커부터 자전거타이어튜브에 정비가능한 장비까지 단단히 챙겨서 길을 나선다.


경주 내남면인 우리 집에서부터 외할머니댁인 포항 송도동까지 내비게이션을 찍어보니 45km이다.


작년 여름방학 때 한번 도전했다가 타이어가 2번이나 터지는 바람에 내가 수송해 온 적이 있다.

그때 성공하지 못했던 아쉬움 때문일까? 혼자만의 시간과 자유를 만끽하며 내달리고 싶은 것일까?


가는 중간중간  단문의 문자로 위치를 알려왔다.

3시간 후, 외할머니댁에 도착한 아들은 전화 버튼 누를 힘도 없었던 것인가?

'도착'

두 글자로 행방을 알렸다. 엄마집  아래에 사는 여동생이 조카가 도착했다며 구구절절 상세히 전해준다. 다녀오면 출필고 반필면(出必告 反必面)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짚어줘야겠다.





 

소아청소년정신과의사로 유명하신 서울대학교병원의 김붕년교수님께서는 자식은 나에게 온 가장 귀한 손님이라서 언젠가 떠날 시기가 온다고 하셨다. 그러기에 가장 많이 사랑해 주고 귀하게 대접해 주되 떠날 시기가 되면 편안히 보내주라고 하셨다.


지나가듯 흘러들었던 그 말씀이 갑자기 떠올랐다.

혼자 외할머니댁에 찾아가는 것도 신기하고, 자전거를 타고 45km를 홀로 여행하듯 떠났다는 사실은 내 생각과는 다르게, 보다 더 많이 자란듯한 생생한 물증 앞에 맘한구석이 싱숭생숭해졌다.


오전 내내 일이 손에 안 잡혔다. 아이의 안전이 염려되기도 했지만 세월의 속도가 5g를 능가하는 듯했다.


'언제 이만큼 큰 거니? 괜스레 서글퍼지려 하네. 내 나이 먹는 건 상관없지만 너는 천천히 크며 좋겠다'




아들이 없는 방안을 천천히 들러본다. 아이의 빈자리, 아이의 흔적이 유독 크게 다가오는 밤이.

내일이면 볼 텐데 유난스러운 것 같다가도, 나도 모르게 많이 의지하고 기댄 것 같다는 생각이 천천히 몰려온다.

유난스러운 엄마는 아니라 생각했는데  나도 어쩔 수 없는 엄마인가 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오늘 하루만 유별스러운 엄마가 되어보려 한다.


"보고 싶다, 아들아~ 억수로 보고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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