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노고를 잊지 않겠습니다

신랑의 일터에 갔던 날

by 박현주

어제는 신랑이 하는 일을 직접적으로 보고 듣고 느끼고 왔다.

신랑이 일하는 곳을 단 한 번이라도, 숨어서라도 꼭가서보길, 얼마나 치열하게 사는지, 힘들지만 가족을 위해 어떻게 견뎌내며 사는지 한 번만이라도 찾아가 보라던 어느 분의 말씀이 귓가에 맴도는 날이었다.





우리 신랑은 포클레인기사다. 중장비업을 하고 있다. 시아버지께서 하셨던 업을 이어받았다.
군대 제대 이후부터 쭉 해서 내년이면 20년 차 베테랑기사다.
시작부터 전국 각지를 다녔던지라 떨어져 지낸 시간이 길었지만 지금은 함께해서 더없이 기쁘다.


3대가 덕을 쌓아야만 한다는 주말부부를 대부분 부러워했다. 나는 그렇지 않았는데 내 속도 모르고 복에 겨운 소리들을 한다. 아이를 키울 때 함께 할 수 없음이 얼마나 힘겨운지, 외로운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아이가 커가며 함께 웃음 짓고 눈물짓게 되는 그 소중한 순간순간들을 나만 홀로 경험해야 했다. 그 사실이 가장 슬프고 가슴 아팠고 신랑 또한 그게 가장 한이 된다고 했다.
다른 곳에서 같은 슬픔으로 16년을 견뎌냈다.
다른 말 필요 없이 고생했다고, 고맙다고 전하고 싶다.


16년간 주말부부로 지내며 신랑도 없이 시어른들과 한 지붕아래 살아간다는 게 지금은 아무렇지 않지만 그때만 해도 모든 게 어렵고 숨 막히고 눈치가 보였다.
아이가 있어서 그나마 대화거리도 있었고, 서먹함을 이겨낼 수 있었지만 내가 가장 힘들었던 건 외로움이었다.


아는 사람도 하나 없는 촌동네, 말도 안 통하는 핏덩이 아들, 서먹한 시부모님, 외딴섬에 던져져 있는 듯한 극한의 외로움이 나를 잡아 삼키려 했지만 그럭저럭 잘 견뎌냈다.

외로움이 온몸을 감싸 안으려 할 때마다 나의 옆을 지켜준 책과 바늘이라는 친구가 있어 버텨내고 이겨낼 수 있었다. 이때부터 책과 바늘은 나에게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운명 같은 친구가 되어주었다.





일없는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날일이 들어와 불국사와 보문단지 2 군 데서 일을 마치고 5시경 지인형님의 할머니댁으로 향했다.

낮부터 필요한 연장을 문자로 알려왔고 나는 꼼꼼히 준비해 뒀다. 나는 나대로, 신랑은 신랑대로 지인할머니댁에 도착했다.
준비한 연장을 한 곳에 모아두고 신랑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딘가 모를 든든함과 측은함이 함께 몰려와 나를 휘어 감았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했다.

신랑이 장비사업을 하다 보니 집에는 연장창고가 따로 있고 나 또한 웬만한 도구의 이름들은 꿰고 있다.
그 덕에 옆에서 조금씩 거들 수 있었고 장작 4시간 반동안 공사를 이어갔다.

쉽사리 다가설 수 없는 냄새, 쥐가 튀어나올법한 느낌이 드는 하수구의 고약한 냄새와 뚫어도 뚫어도 안 나오는 시멘트바닥,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시멘트바닥 아래는 사람머리만 한 돌들이 꽉 차게 들어앉아있었다.

좁은 공간이라 거드는 것도 수월하지 않았다.
물이 새는 원인을 찾기 위해 수도관을 찾는 게 급선무였고 신랑은 그곳을 찾아내 오래된 부분을 새것으로 교체했다. 이어 땅을 파며 부서진 하수구파이프도 교체했다.



수도,하수도를 교체 중인 신랑



내 눈에 신랑은 맥가이버였고 가제트형사 같았다.
땅을 파 돌을 건져낼 때까지가 힘들고 오래 걸렸지 그 뒤로는 속전속결, 뚝딱뚝딱하더니 금세 관을 연결시키고 하수구도 연결시켰다.
마법의 손 같았다. 재빠르게 완성시키는 모습을 보니 든든하고 대단해 보였다.

돕던 내게 미안했던지
"안 피곤 하나?"를 연신 물어본다.
나는 괜찮은데, 아무렇지도 않은데 말이다.

"자기는 매번 이렇게 힘들게 일해서 어떡하노?"

"매번 이렇지는 않다."

라고 말했지만 옆에서 직관한 내 기분은 단지 멋져 보이는 것의 문제가 아니었다.

허리가 늘 아프다 했던 이유도, 밤마다 코가 찢어져라 골아대는 코골이 소리에도 전부 이유가 있었다는 사실에 가슴이 미어졌다.

도움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했다.
신랑을 도울 수 있다면 돕는 게 마누라의 역할이라 여겼다.
4시간 반의 시간은 신랑을 돕기도 했지만 신랑에게 더욱 감사하게 되었고 앞으로 더욱 최선을 다하겠다는 마음가짐을 다지는 시간이 되었다.

한번 감사할 것을 두 번 감사하게 되었고, 허리 아프다 하면 조금 귀찮아했던 마음도 쉽게 접고 마사지까지 거뜬히 해줄 수 있는 아량 넓은 아내가 되게 해 주었다.

맞벌이하던 순간에도, 아이들을 키우며 전전긍긍할 때도 '나도 고생하니까'라는 마음을 품고 신랑의 힘겨움을 감사하기보단 당연시 여기며 살았다.


이제는 아니다. 나와 아이들을 위해 애쓰는 신랑에게 조금 더 감사하게 되었고, 최선을 다해 섬기겠노라 다짐하게 되었다.
돈의 높낮이와 상관없이 이 마음만큼은 변하지 않게 해 달라며 기도해 본다.

내일저녁은 향긋한 냉이된장국과 좋아하는 고기로 하루의 노곤함을 씻어내줘야겠다.





당신의 노고를 잊지 않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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