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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주 Mar 20. 2023

봄이 허락한다면 한 번만 더

냉이된장무침

완연한 봄이다.
적막하고 푸석해 보이는 땅에서 푸르른 청춘의 빛이 솟아오르는 계절이 도래했다.

눈길이 닿는 곳마다 봄이 움튼다.
따뜻하고 신비롭다.
약속이라도 것처럼 앞다투어 꽃망울을 터트리고 메마른 바닥을 비집고 나오는 초록물결들은 숭고해 보이기까지 한다.


수국과 무스카리
향기가 천리를 간다는 천리향& 앵두꽃
밭 풍경



며칠째 봄볕이 예사롭지 않다. 따뜻하다 못해 뜨겁다.
아마도 겨우내 얼은 땅을 녹이려는 의지일 거라 짐작해 보지만 조용한 듯 강하다.

옛 속담에 '봄볕에 그을리면 보던 임도 못 알아본다', '봄볕은 며느리를 쬐이고 가을볕은 딸을 쬐인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봄볕은 일사량도 많고 자외선지수도 높다.

불볕더위에 맞먹는 강한 봄볕과 사투를 벌였다.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봄나물 찾아 헤매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지천으로 나물들이 깔려있었다.
뿌려놓은 듯한 나물들 중에서 냉이를 찾기 시작했다.

신랑에게 맛 보여주리라 마음먹었기에 완전무장을 한 뒤 밭으로 향했다. 먹이를 찾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처럼 눈에 불을 켜고 냉이를 찾았고 호미질을 해댔다.

호미질 몇 번에 냉이가 자태를 드러냈고 이윽고 코에 가져가 대어 보았다.
긴가민가 고민되길래 뿌리를 쓰윽 한번 긁어 향을 맡아보니 냉이향이 코를 훅 치고 들어온다.


냉이


한소쿠리를 캐서 집으로 돌아왔다.
냉이된장국을 해주려 했는데 쑥국을 끓여놨던 터라 오늘 채취한 냉이는 냉이된장무침으로 변경했다.
생각만으로 침이 입안을 가득 메웠다.

냉이에 붙은 흙을 잘 털어내고 노랗게 뜬 잎도 다듬어 잘 씻어서 건져낸 다음 끓는 물에 재빨리 데쳐냈다.
데쳐낸 냉이는 물기를 빼고 된장, 마늘 다진 것, 알룰로스(설탕으로 대체가능)와 깨소금, 마지막 참기름으로 마무리지어 무침하나를 금세 만들어 다.

나는 여느 무침들 중에 된장무침을 가장 좋아한다.
신랑도 맛보게 해주고 싶었지만 나에게도 봄을 선물하고 싶어서 더욱  만드는데 신중을 기했다.

데쳐져 더욱 푸릇한 냉이는 그냥 먹어도 될 만큼 식욕을 자극시켰다.
냉이된장무침을 얼른 무치고 한입 가득 넣었다.
봄이 입안으로 들어왔다.
달큼하며 향긋한 냉이 특유의 내음은 가히 최고의 반찬이었다.
입안에 퍼지는 봄향기와 구수함의 혼연일체는 내 혀를 춤추게 했다. 맛있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따사로운 봄볕에 감사했고, 냉이를 품어준 땅에 감사했다.
봄에만 허락되는 이 나물이 귀하면서도, 더 먹을 수 없는 아쉬움에 발을 동동 구르게 되는 심정이었다.

냉이된장국은 못했지만 냉이된장무침으로 봄을, 봄기운을 만끽했다. 봄에만 받을 수 있는, 봄에만 주어지는 선물에 감격하며 맛과 향을 음미했다.


냉이된장무침과 들깨가루먹은 쑥국


냉이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있다.
다시 한번 먹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봄이 허락한다면 한 번 더 무쳐먹고 싶다.

남이 해준밥이 가장 맛있다고들 하지만 냉이무침만은 내가 만든 게 최고로 맛있다. 내일 한 번 더 봄에게 문의해보려 한다.

"제발 한 번만 더? 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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