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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주 Mar 01. 2023

방학의 끝, 최후의 카드

김치볶음밥

봄방학 없이 1월 초부터 시작된 겨울방학.
두 달간 하얗게 불태웠다. 밥 하느라 방학이 어찌 흘렀나 모르겠다.
끼니를 라면으로 때우는 것을 나 스스로가 용납할 수 없었던 터라 밥만큼은 최선을 다해 먹였다.


두 아이 모두 좋아하는 고기도, 아들이 좋아하는 숙주나물무침, 딸아이가 좋아하는 삼색나물무침등 국과 반찬을 매 끼니마다 나름 푸짐하게 준비했다.

이번 방학을 라면으로 보내지 않게 했다는 것만으로 뿌듯하다. 이게 머라고.





내가 일을 하던 시절, 방학을 하게 되면 두 아이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매 끼니마다 라면으로 배를 채웠다.

아이들하고 잘 먹고 잘 살자고 일하는 건데 일하는 의미를 잃은듯해속상하고 기운 빠졌던 날이 하루이틀이 아니었다.


일하기 싫어진 시점이 아마도 그때쯤이었던 것 같다. 퇴근하고 집에 들어오는데 수시로 라면 냄새가 풍겼다. 먹을 수는 있다. 먹을 수 있지만 저녁저녁마다 라면을 먹는다면? 글 쓰는 지금도 날이 려한다. 라면냄새를 맡은 날은 입에서 잔소리가 따발총처럼 쏟아졌다. 아이들도, 나도 못할 짓이라 여겼던 날들이 계속되었다.


더욱이 아이들이 자라면서 라면 끓일 수 있는 나이가 되니 부모가 자리를 비우게 되면 기다렸다는 듯이 끼니를 라면으로 대신했다.

반찬을 넉넉하게 해 놔도 무용지물, 간편하고 맛있는 라면으로 손이 다. 에효. 인정하기 싫지만 끊을 수 없는 맛이긴 하다. 

그럼에도 나는 방학 동안 라면의 유혹에서 승리했다.'장하다, 나!'


어제부터 코감기, 기침감기, 몸살감기까지 세트로 방문했다. 불청객이지만 약으로 꿋꿋이 버티고 있다.

이런 몸상태면 한 번쯤 라면을 허락할 만도 한데 쉽게 용납할 수가 없다. 한국인은 밥심이라고 하지 않나? 라면보다 밥을 먹이고 싶었다.

그래서 꺼낸 최후의 카드 '김치볶음밥'이다.




맛난 김치볶음밥을 위해 김치를 준비해야 했다.

김치냉장고가 있지만 작년에 김칫독을 땅에다 2개 묻어 두었다.

김장김치를 자연의 힘으로, 자연스럽게 숙성시켰다. 역시 하늘이 내려주는 기운, 흙의 기운을 품은 김치는 먹기 좋게 잘 익었다.

짭조름하고 맛있게 익은 쉰내가 침샘을 자극했다.

'역시 김치가 최고야. 김치 없인 못살아. 정말 못살아'

노래가 절로 나온다.


가져온 김치를 가위로 마구마구 오려댔다. 스멀스멀 올라오는 김치향에 나도 모르게 입맛을 다시고 있다. 나참.


김치 & 김치볶음밥



가위로 난도질한 김치들을 편수냄비에 들어부었다. 파기름을 내면 더 맛있다는 걸 알지만 파를 손질할 힘이 없어서 이번은 스킵했다.

나름 건강에 신경 쓴다고 올리고당 대신 알룰로스로 대체했다.



알룰로스는 키토식에 대해서 공부할 때(다이어트의 일환으로^^;) 배운 감미료인데 단맛은 설탕의 70프로밖에 안되지만 칼로리가 거의 없고 혈당스파이크를 일으키지 않는다 해서 뚠뚠해지는 아이들과 나를 위해 바꾸었다.


기름 한 바퀴 둘러주고 알룰로스와 조미료를 약간 뿌려주고 열심히 볶았다. 마지막은 참기름 한 바퀴 두르고 불을 끈다. 냄비에 남는 열로 참기름 먹은 김치볶음밥을 저어준다.




그릇에 담고 통깨로 마무리하려다 약소해 보여 계란프라이까지 한 장씩 얹어줬다. 계란프라이 덕분에 대단한 요리를 해준 것 같아 으쓱해졌다.


내가 했지만 참 맛있다. 아니다. 하늘이 했고 땅이 다했다. 맛깔난 김치를 선사했으니.

 김치가 간단한 김치볶음밥이지만 엄마 노릇할 수 있게 해 줘서 고맙고 고맙다.


드디어 개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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