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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주 Feb 24. 2023

봄이 왔으면 꼭 먹어야지

입맛 돋우는 봄동겉절이

오늘도 봄동을 한 아름 사 고 왔다. 보기만 해도 침샘이 자극된 턱끝은 찌릿하고 입안엔 침이 고인다.


봄동은 겨울철 노지에서 자라나 봄에 먹을 수 있는 배추다. 냉이, 달래와 같이 봄을 알리는 대표적인 채소다. 펼쳐져 자라는 배추라 납작 배추라고도 불리는데 아삭거리는 맛도 일품, 향도 진한 데다가 가격도 착하다. 아미노산이 풍부해 단맛도 나는데 안 먹을 이유가 없다. 며칠 전에도 겉절이를 해 먹었다. 입맛 없는 봄엔 봄동이 제격이다.




가리는 음식이 없고, 못 먹는 음식이 없는 나에게도 입맛이 늘어지는 때가 있다.
바로 '봄'이다.
탄수화물조차 쓰러진 나의 입맛을 일으켜 세워주지는 못하지만 딱 하나 묘약이 있긴 하다.
 바로 '봄동겉절이'이다.

봄동킬러라고 할 만큼 쌈장에 푹 찍어먹기도 하고 데쳐서 나물로도 먹지만, 뭐니 뭐니 해도 상큼하고 고소한 겉절이가 입맛 살리는 데는 최고의 명약이다.
제철 나물이자 요리방법도 쉬어 지난주에만 3일을 해 먹었다. 봄동을 먹어야지만 봄이 왔다는 걸 실감할 수 있다.
냉이도 올라오고 있고 민들레잎도 곧 무쳐먹겠지만 초봄에만 나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이기에 꼭 요리해 먹는다.





정월대보름에 부럼을 깨무는 것이 한해의 부스럼을 예방하고 이를 튼튼하게 한다는 의미가 있듯이, 오곡밥을 먹어야 오장육부에 다양한 영양소가 고르게 보내질 거라 믿는 선조들의 풍습이 있듯이, 봄을 가장 먼저 알리는 봄동을 먹어야 한해를 튼튼하고 상큼하게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들어 꼭 먹어왔다. 엄동설한 차가운 기운을 이겨내고 얼어붙은 땅을 비집고 올라온 그 기운을 온전히 받고 싶은 욕심도 한몫했다.

먹고 나면 산삼을 먹은듯한 기분은 나만 느끼는 착각인 것일까?
아무렴 어때! 맛 좋고 힘나면 그게 보약이지.
나만의 보약이지만 봄이 오니 함께 나누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

구내염으로 고생하는 신랑 입맛도 돌게 해주고 싶고, 내가 만든 봄동겉절이를 늘 맛있다고 해주시는 시어머니도 드리려고 오늘은 많이 무쳤다.
중학생이 되는 딸도 이것만큼은 엄지를 치켜 들어주니 먹을 만 하긴 한가보다.




제일 먼저 먹기 좋게 뜯는다. 봄동요리할 때만큼은 보통 칼을 사용하지 않는다.
손맛이 거기까지 영향을 끼칠지는 모르겠지만 조금이라도 손맛을 더하기 위해 한입에 먹기 좋게 손으로 뜯는다. 뜯은 후 여러 번 세척한다.
물기가 어느 정도 빠지면 고춧가루, 간장, 식초, 올리고당, 다진 마늘, 통깨만 넣고 조물조물해 주면 끝이다. 참! 요리의 마지막에 두르는 고소함 가득한 참기름은 화룡점정이 된다.

내가 만든 접시에 이쁘게 담으면 끝!! 이제 맛있게 즐기기만 하면 된다.


불두화 잎을 찍어 만든 접시&봄동겉절이


무친 즉시 먹으면 신선함을 품은 아삭 거림과  배춧잎에서 빠져나온 수분이 입안을 가득 메운다. 짙은 배추향과 적절히 조합된 양념장은 입안을 돌아다니다 혀를 즐겁게 해 주어 먹어도 먹어도 물리지 않는다.
낙지는 쓰러진 소도 벌떡 일으킨다지만 봄동은 쓰러진 내 입맛을 벌떡 일으켜 세워준다. 여간 고마운 게 아니다.

제철음식이라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속도 편하고, 노화방지에도 좋다니 봄동이 자취를 감추는 그때까지 열심히 먹어야겠다.


같이 글 쓰는 모임에서 한 작가분이 얼갈이로 샐러드를 만들어 드신대서 신박했다. 물김치로만 먹던 얼갈이를 샐러드로? 봄동 사러 갔을 때 옆칸에서 얼갈이를 보았으나 눈길만 한번 주고서 냉정하게 돌아섰다. 만들어 먹을 자신이 없어서 봄동만 날름 들고 나왔다.

봄동에게 푹 빠져서 못 헤어 나오고 있어서 다른 것에 눈길 줄 여유가 없다. 얼갈이에겐 미안하지만 봄동이 질릴 때까지 실컷 먹어야겠다. 내일은 쌈 싸 먹고 모레는 전 부쳐먹어야지. 먹는 것에 진심인 나는 먹는 생각만으로도 즐겁고 행복해진다.


봄이 성큼 다가왔다. 이 봄이 가기 전에 무조건, 꼭 드셔보시길 간청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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