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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주 Mar 29. 2023

쌉싸름 속에 녹아있는 달콤함

민들레 무침

해가 모습을 드러내기 전이다. 어둑어둑하지만 곧 아침이 올 것 같은 밝음이 서서히 드리워진다.

스테인리스 볼과 칼을 챙겨 집밖으로 나왔다.
상큼하면서 딱 기분 좋은 상쾌한 공기는 이른 아침을 맞는 나에게 선물이 되어준다.

어제 봐둔 민들레를 찾아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긴다.
꽃이 맺힌 건 질기다고 들어서 부드럽고 연해보이는 잎만 골라 조심히 잘라본다.
통째로 뽑으면  꽃을 더 이상 볼 수 없기 때문에 최대한 살리려는 의지를 품고  칼을 들이댔다.

연하니 쉽게 잘린다. 주섬주섬 잎을 주워 흙과 색 바랜 나뭇잎, 잡초를 제거하고 나서 잘 담아둔다.


뜯어 온 민들레잎



나는 집중할 수 있는, 몰입할 수 있는 일을 좋아한다. 돌이켜보니 나란 사람, 단순하면서 무념무상을 즐기는 사람이었다. 잡생각 안 하고 집중하는 것이 너무 좋다. 그냥 좋다.

독서, 바느질, 글쓰기, 풀 뽑기, 나물 캐기 등 몰입해야 하는 일들이 나랑 잘 맞다는 걸 시간이 지날수록 느끼게 된다.





오늘은 그림책출판과 그림책지도사 수업으로 하루종일 시립도서관에 산다.
선생님 한분이 오전, 오후 수업을 모두 하시는데 그분이 민들레를 사랑한다는 걸 지난주에 알게 되었고, 먹는 것에 진심인 나는 민들레를 보며 무쳐먹으면 맛있다고 하고선 말끝을 흐렸다.

맛을 궁금해하신 선생님께 맛을 보여 드리고 싶어 새벽부터 민들레 사수에 나선 것이다.
연한 것으로 고른 잎들을 들고 와 차가운 물에 담갔다.
샤워를 마친  민들레잎은 물기를 제거하고 겉절이처럼 무쳤다.

간장, 식초, 설탕, 마늘 다진 거, 고춧가루, 통깨, 참기름을 이용해 조물조물 무쳤다.
간을 보기 위해 집어든 민들레잎 한줄기를 입으로 가져갔다.

입속으로 들어간 새콤달콤한 양념장맛에 마늘향이 어우러져 침샘을 자극시켰고,  민들레 잎을 씹자마자 쌉싸름한 쓴맛이 입안을 장악해 버렸다.

입에 쓴 약이 몸에도 좋다는 옛말이 맞을 거라며 입안을 감도는 쓴맛을 참아내려고 안간힘을 써본다.



민들레 무침(겉절이)



오전수업이 끝나고 선생님께 보여드렸다. 감기기운 때문에 집에 가서 드신다 했지만 양념장을 찍어먹어 보시고는 맛있다고 해주셨다.

그거면 됐다.  맛있게 드시고 건강해지시면 나는 그걸로 족하다.
받는 기쁨도 크지만 내 힘으로, 내 능력으로 무언가를 해드렸을 때의 기쁨은 받는 것 이상의 행복과 즐거움을 선사한다. 대체불가한 힘이 있다.

며칠 전 생일이셨던 선생님께 나는 진심을 담아 음식과 선물을 준비해서 전해드렸다. 기뻐하시는 소녀 같은 모습에 나 또한 덩달아 행복해졌다.

쌉싸름한 민들레를 나누었지만 달콤한 기쁨을 맛보았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
육체가 쓰러지면 그전에 깨닫지 못했던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인간은 관계의 덩어리라는 것을. 오직 관계만이 인간을 살게 한다는 것을.
-생텍쥐페리의  <아리스로의 비행>중에서



그렇다.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다. 실타래처럼 얽힌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내가 얻은 인연, 내가 만난 인연들은 나를 살게 하는 사람인 것이다. 잊지 말고 살자, 감사하며 살자.
인연이라는 소중한 끈이 끊어지지 않게 애쓰는 사람이여야겠다.

오늘도 나는 인연이라는 끈을 단단히 묶고 왔다.

만남은 인연이고 관계는 노력이라고 한다.
인연을 만났고 인연을 위해 노력한 하루였다.

그런 나, 오늘도 애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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