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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수 할배 Aug 03. 2024

그 아이디어, 어떻게 생각해 냈어요?

(8화) 미국교육실습 구상

         새로운 아이디어가 엉뚱하지 않으면 그 아이디어에는 희망이 없다.

                                                                                                                               아인슈타인


내가 미국교육실습을 제언하고 시행하면서 자주 들었던 말이다. 같은 대학교의 동료교수, 국내 교육대학교와 사범대학의 총장 및 학장에게 미국교육실습을 소개할 때마다 들었다. 미국교육실습은 우리나라의 예비교사인 교육대학생, 사범대학생, 교직전공 학생이 미국의 학교에서 현장실습을 한 프로그램이다.


  ‘미국 교육 실습’은 한국에서 내가 가장 먼저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가장 열심히 했다고 자부한다. 그렇지만 예상하다시피 한 꺼풀 벗겨보면 많은 분들이 협조하며  해야 할 일을 알려주고 조언하였다.


2005년이던가, 재직하는 대학교의 강지형 총장님은 나를 국제교류담당관으로 임명하였다. 임명장을 수여하는 자리에서 그분은 이런 미션을 주셨다. “주요 국가의 대학교와 자매결연 하자.” “자매결연 한 대학교와 사업을 하자. 그리고 사업의 조건은 두 가지다. 첫째, 다른 대학교에서 하지 않는 걸 하기. 둘째, 우리 대학교의 특성을 살리는 사업하기.” 이 두 가지는 당연하게 들렸다. 그런데 우리 대학교의 특성을 살리면서 다른 대학교에서 하지 않는 사업을 생각해 찾아내기는 쉽지 않았다.


  2000년에 미국의 인디애나 대학교에 교환교수 갔다. 당시에 그 대학은 교생을 멕시코, 중국 등 외국으로 교육실습을 보내고 있었다. 여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우리 대학교 학생을 미국으로 교육실습 보내고 싶었다. 이 사업은 교육대학교의 특성을 살리면서 다른 대학교에서 시행하지 않는 사업을 하고자 당부했던 강 총장님의 기대에도 부응하는 사업이었다.


그래서 2007년 3월 14일 미국의 서부오레곤대학교(Western Oregon Univ.)와 협약을 맺고 교육실습도 제안했다. 대학교의 담당자가 1개월 실습비로 7,000불을 요구하였다. 항공료를 제외한 비용이라 무척 높게 느껴졌다. 지출 항목을 보니 30분 정도 거리에 실습학교를 정하고, 버스를 임대하여 그 학교로 매일 등하교시키는 프로그램이었다. WOU 주변에도 실습생을 보낼만한 공립학교가 있었지만 그 교수는 먼 거리의 실습학교에 대한 주장을 굽히지 않아서 실현하지 못했다.


2008년은 나의 인생에서 특별한 해였다. 50세가 되었기 때문이다. '50세! 공자는 50세를 지천명이라고 하였다. '지천명'이란 나이 오십을 가리키는 말로 하늘의 뜻을 알아 그에 순응한다는 뜻이다. 정년퇴직까지는 15년이 남았으므로, 그 기간 동안에 전념할 수 있는 의미 깊은 ‘하늘의 뜻’을 찾아 몰두하고 싶었다. 마침 그때가 겨울방학이라서 생각을 정리할 여유가 있었다. 며칠 동안 심사숙고한 끝에, 몇 가지 중요한 목표를 선정하였다. 개인 삶의 목표로는 ‘위대하게 살자’. 수업방법으로는 ‘프로젝트 학습’, 국가와 우리 학교를 위해서는 ‘미국교육실습’을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미국교육실습을 추진하면서 마음속으로 두 가지 목표를 세웠다. 하나는 우리나라 미래의 교사에게 미국의 교육제도와 문화를 가장 알차게 경험시켜서 그들의 삶의 수준을 높이는데 기여한다. 젊은 교사들의 삶의 수준이 높아지면 우리나라의 교육을 발전시키는 데 기여할 것으로 여겼다.


그래서 가능하면 다양한 교육체험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대학교, 공공도서관, 과학관, 어린이 박물관 등을 방문하여 교육프로그램을 살펴보았다. 국립공원을 방문할 때도 교육프로그램을 찾아보고, 담당자를 면담하였다. 대학교수의 강의도 들었다. 연구논문을 영어로 작성하여 한국의 학회에서 발표했다.


또 하나는 우리나라 청년들에게 미래로 향하는 문을 열어주고 싶었다. 내가 우리나라 교생들을 보낼 지역을 찾으러 다닐 때, 하루는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스탠퍼드 대학교를 방문하였다. 교육대학 건물에 들어가서 시설을 구경하는데, 벽에 재직한 교수들의 사진을 전시하였다. 그 사진 중에는 유학하면서 공부한 교재를 집필한 교수의 사진이 있었다. 그 사진을 쳐다보면서 한참을 서 있었다. '저분도 교수고 나도 교수인데, 저분은 이론의 창조자요 나는 전달자구나.' '나는 현재 이런 위치에 있더라도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은 세계의 교육을 이끌어가도록 도와주어야겠다.'라고 다짐하였다. 이러한 생각을 오리엔테이션을 비롯하여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강조하였다.   


미국교육실습은 총장의 비전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탄생하였다. 이 프로그램을 통하여 나는 개인적으로 젊은이들에게 더 나은 미래를 제공하고 싶었으며, 이를 통하여 우리 교육의 발전에 조금이나마 기여하기를 바랐다. 다행히 이 사업에 참여한 대부분의 교생들은 "인생에서 가장 훌륭한 경험을 했다"라고 말했다. 교생들의 대학교에서 총장과 교수들이 실습학교를 방문하였을 때, 학생들은 모두 만족감을 표시하였다. 한국대학생들은 자신감과 자부심 가득한 얼굴로 행복함을 증명하였다.



*If at first the idea is not absurd, then there is no hope for it. Albert Ein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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