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미작연구소(IRRI)와 한국인들
필리핀 사람들은 뭐가 그리도 좋은지 늘 웃고 살았다. 구릿빛 얼굴에 눈도, 이빨도, 주름살조차도 함께 웃었다. 주어진 일 때문에 긴장하는 나와는 달리 걱정이 없었다. 현직 시절 아시아의 영어권 필리핀에 위치한 국제미작연구소에서 다른 나라 연수생들과 함께 공부했을 때 이야기이다.
하얀 똬리 두건을 머리에 올린 인도 사람은 새까만 팔자수염에 영어도 잘하여 우리 연수단의 두목처럼 행동했다. 자기를 소개할 때도 ‘인류 문명의 발상지 후손’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교실에서도, 차를 탈 때도 그는 항상 좋은 자리를 차지했다. 때로는 예의가 없어 보였지만 연구소 직원들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필리핀과 인도는 영국 식민 지배 영향으로 영어가 유창하다. 나는 말도 서툰 데다 낯선 사람들과 쉽게 친해지지 못하여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보였을 것이다. 버마, 태국, 스리랑카, 말레이시아 사람들도 나처럼 남들 앞에 나서질 않았다.
마닐라에서 한 시간 정도의 거리에 있는 로스바뇨스 조용한 도시에 국제미작연구소(IRRI)가 있다. 이곳에는 세계 각국의 농업 연구자들이 모여 벼농사에 해를 주는 벌레나 질병에 강한 품종을 연구한다. 홍수나 가뭄 같은 기후 변화에 견뎌내는 쌀 품종도 개발한다. 현재 아시아에서 재배되는 쌀 품종의 절반 이상이 여기 출신이고, 한국 식량 자급 달성에 기여했던 ‘통일벼’도 이곳에서 나왔다.
세계 각국에서 파견된 석학들 중에는 한국의 실력자들도 많다. 주로 농촌진흥청의 박사님 들이며, 교수, 연수생들 다양하다. 개인 유학생도 있다. 필리핀 농과대학 중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곳이 UP(University of Philippines)인데 연구소에서 가까워 유학생도 우리 숙소를 이용할 수 있었다. 아시아의 영어권이면서 학비가 저렴하며, 다른 영어권 나라로 전학할 수 있어 한국 학생 관심이 많은 나라이다. 한국인들은 IRRI에서 자부심이 컸다. 우리의 경제, 문화 수준도 높았고 실력도 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어가 인도인처럼 뛰어나진 못해도 조용히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한국농업 과학자의 실력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며 존재감을 들어내 주기를 나는 원했다. 국제기관인 이곳 행사장에서 좌중을 주도하는 자들은 언제나 영어 잘하는 사람들 이였다. 학생 때 영어 시험 점수에 얽매였던 우리였으니, 말 때문에 자존심이 상할 때가 종종 있었을 것이다.
식사 시간에는 한국인들은 같은 식탁으로 모인다. 그 자리에서 서로의 동향을 주고받는 반갑고 중요한 자리이다. 내 귀를 놀라게 했던 것은 농진청 박사님들의 수면시간이었다. ‘발표 준비 때문에, 보고서 때문에, 시험 준비 때문에 한두 시간만 잤다’는 얘기를 자주 들었다. 학위 공부를 하는 장기 파견자들은 가족을 데려오려면 성적이 일정 수준 이상 돼야 가능하기에 밤잠을 설쳐가며 무섭게 공부하였다. 외국에서 학위를 받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닐 거로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였을 줄은 몰랐다. 농진청의 어떤 고위직 분은 마닐라에서 수백 km 거리 오지 마을에서 혼자 숙식을 해결하며 공부하던 모습이 놀라웠다. 고국의 명예와 자신의 발전을 위하여 고군분투하시는 농진청 박사님들이 존경스러웠다.
연구소 한국인들은 평소 모범적인 생활을 하면서도 주말에 스트레스 풀 때는 에너지가 넘친다. IRRI에서 시내까지는 오토바이에 수레를 단 모터(지 푸니)를 타고 쉽게 다닐 수 있다. 시내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기다가 귀소 시간이 늦어 지적되는 일이 많았다. 술에 취하면 한국에서처럼 광기를 부렸다. 달리던 지푸니에 탑승한 승객들을 모두 내리게 하고 자가용처럼 이용했다. 운전사에게 그만큼 비용을 지급하지만 현지인들에게 욕먹기 좋은 추태였다. 지프니에서 내려야만 했던 승객들이 우리 뒤에 대고 뭐라 했겠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필리핀에는 총기 소지자가 많다. 불법 유통이 쉽고 불안정한 사회 분위기로 폭력과 총기 사고가 잦은 나라이다. 어느 날 술집에서 어떤 젊은이가 우리 곁에 앉아서 총기를 들이대며 돈을 요구했다. 그때 동료는 “우리는 관광객이 아니다”라고 차분하게 맥주를 권하며 위기를 모면했다. 한국인들이 현금을 많이 소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희생당한 사람도 있었다. 혼자 다니기에 매우 위험한 곳이다.
필리핀 사람들은 자유분방하다. 가난해도 항상 웃으며 즐겁게 산다. 돈이 없는 여인들은 외국인과 동거하며 생활비를 번다. 공원이나 으슥한 곳에서는 낯 뜨거운 행위도 거침이 없다. 대부분 가톨릭 신자들이어서 원치 않은 임신이 돼도 낙태를 하지 않는다. 젊은 여성들이 아기를 기르며 미혼모로 살아가는 안타까운 일들이 있다. 일부 몰지각한 한국인은 2세를 남겨둔 채 떠나버려 원성을 사기도 했다.
IRRI에서 5개월간의 작부체계(CSTP) 연수과정은 시험구 배치, 파종, 재배 관리, 수확량 통계 등 일련의 작물생육 연구과정을 수행하였다. 이때 경험이 농업전문가로서 역량개발과 해외 활동에 힘이 되고 있다. 중년의 농업학자들이 밤을 새 가며 공부하는데 감동하였다. 아세안 10개국의 주요 우방국으로 한국과의 교류가 보다 확대될 전망이며, 한국인 기업가들의 진출과 유학생들도 증가될 것으로 본다. 필리핀에서 150일이나 같이 살았는데도 '늘 웃는 모습'은 닮지를 못했다. 욕심을 버리고 매사에 감사하며 사소한 것에서 행복을 찾다 보면 나도 좀 더 밝아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