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미작연구소의 중국인들

개인이 잘 돼야 나라도 잘 된다라는 중국인들 이야기

by 노고지리

외국에서 중국 공무원들과 같이 일하는 기회가 있었다. 현직 시절 필리핀에 소재한 국제미작연구소(IRRI)에서와, 은퇴 후 캄보디아 농업연구개발원(CARDI)에서였다. IRRI에서 중국인 2명은 같은 연수생인 데다 숙소가 바로 옆방이어서 사적인 친분도 쌓았다. CARDI에서는 각자가 자국의 농업전문가로서 이야기가 시작되면 서로의 이야기가 거미줄처럼 끝이 없었다. 그들은 겸손하였고 행동이 의젓해 보였다.

연수생들에게 물 속에서 자라는 야생 벼 특성을 설명


IRRI에서는 중국이 큰 나라임을 새삼 느꼈다. 어느 부서를 가나 중국인들이 있었다. 밖에서는 혼자 다니지 않았고 2명 이상 조를 짜서 다녀야 한다고 했다. 소떼처럼 몰려다니는 것도 보았다. 다른 나라에도 가는 곳마다 중국인들은 넘쳐났다.


필리핀의 오지마을 견학

중국인들이 IRRI에 단체로 도착하던 날, 처음 본 그들의 모습에 충격을 금치 못했다. 수 십 년 전의 이야기지만 차림새가 너무나 남루하여 내 눈을 의심하였고 자신들도 당황하는 거 같았다. 다른 사람들과 너무나 대조되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가난한 사람들이라 해도 정부에서 선발한 엘리트 일 것이고 공항에서 수속을 밟으며 항공기로 왔을 텐데 공직자의 차림이라고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들 생활수준을 짐작게 하였다. 연수단이 도착하면 먼저 왔던 우두머리는 그날 밤 모두를 시장에 데려가 새 옷으로 갈아입힌다고 하였다. 역시 다음날 아침엔 깔끔해졌다.


중국인들은 공부도 열심히 했지만 영어도 잘했다. 처음 왔을 때 더듬거리던 사람들도 2~3개월만 지나도 실력은 눈에 띄게 달라졌다. 중국어의 어순이 영어와 같고 혀를 굴리는 발음도 우리보다 훨씬 쉽게 하였다. 두 연수생 중 하나는 대화가 어려울 정도였으나 연수과정이 끝날 무렵에는 나보다 더 잘했다. 영어를 쉽게 익히는 그들이 부러웠다.


미작연구소(IRRI) 인도네시아와 스리랑카 연수생

옆방의 중국 친구는 IRRI에서 매월 받는 용돈(Pocket money)을 어느 정도 쓰고 남으면 본국 정부로 송금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시장을 자주 갔다. 어느 날엔 새로 산 대형 카셑 라디오 볼륨을 올린 채 음악에 맞춰 어깨를 들썩였다. 듣다 보니 한국의 대중가요가 신나게 흘러나왔다. 어느 나라 노래인지 몰라도 듣기 좋아 구입했다고 했다. 노래를 따라 불러 주었더니 더 흥에 겨워 덩실거렸다.


어느 날엔 보자기에 말린 그림 한 점을 보여주었다. 중국 그림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명화인지 작가가 누구인지 몰랐지만, 강에서 물고기를 낚아 올리는 그럴듯한 산수화를 50달러에 구입하였다. 한 푼도 깎아주지는 않았다. 친구는 연수차 오면서 외화벌이까지 했던 것이다. 세계 어디를 가도 중국 상인들이 상권을 장악하는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옆방 친구는 금전 감각이 철저한 중국인의 모습 그대로였다.


연수과정을 마치고 귀국할 때 대만을 경유하였다. 타이베이 입국장에서는 내 그림을 보더니 '때 묻은 벽지'보듯 하였다. 중국 본토 물건을 소지해서는 안 된다고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였다. 그림을 공항에 보관해야만 입국이 허용되었다. 중국 본토 정부와 대만과의 심각한 정치 관계를 실감했다.


과거 ‘사스’가 중국 광둥 지방에서 전파되어 세상을 놀라게 했는데, 2020년 봄에는 '우한 폐렴'이라고 불렸던 신종 코로나를 발생시켜 온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고 있다. 미국에서는 '코로나-19'가 중국이 발원지라고 주장하는데, 중국은 오히려 미국에서 시작됐다고 맞받아치고 있다. 어쨌든 국제사회는 중국을 불결하고 예의 없고 무책임한 국가로 비난하고 있다. 일부 서방 국에서는 애꿎은 한국인에게 "Go home"을 외치며 길거리에서 무차별 폭행을 가하기도 하였다.


미작연구소 작물육종부

중국 영토는 세계 3위로 한국보다 96배가 큰 나라이다. 인구가 14억으로 세계 인구의 20%를 차지하고 있다. 동북아의 요충지에 위치한 대한민국이 중국과 미국의 갈등 속에서도 실리외교를 고심하고 있다. 그들은 극단에 치우치지 않고 조화를 이루는 중화사상으로 세계와 관계를 맺어왔다. 날로 커져가는 경제력을 바탕으로 자존심, 개인주의, 재물, 건강, 식문화 등 중국 특유의 국민성에서 우리는 국익을 위한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1983년 5월 중공 민항기가 춘천 미군 기지에 비상 착륙했던 일을 기억할 것이다. 당시 민항기를 공중 납치한 범인들은 중공군들로 타이완을 종착지로 승무원을 위협했으나, 미 수교국인 한국에 불시착하여 세계적인 빅뉴스가 되었다. 중국에서는 교섭 대표가 급파되어 한국전쟁 후 처음으로 공식 접촉이 있었다. 당시 중국인 승객들은 한국 정부의 배려로 서울시 번화가를 둘러보았고, 유명 기업에서는 최신 전자제품을 선물로 주었다. 5일 만에 본국으로 돌아갔지만 한국의 발전상에 놀라워했으며, 이를 계기로 한국에 대한 중국인들의 시각은 우호적 분위기로 반전하였다. 이후 한국과 중국은 스포츠와 교역에서 교류가 활발해졌으며 1992년 국교가 수립되었다. 88 서울 올림픽 때 중국의 대표 선수로 참가했던 탁구선수 자오즈민이 한국의 안재형과 결혼했던 일은 양국 간의 민간 외교 역할로 또 다른 국제적인 뉴스거리가 되기도 하였다.


숙소 이웃이었던 중국인들

80년대 가난한 나라라고 무시당하며 공부했던 그들이 오늘날 중국을 경제대국으로 만들었다. IRRI 연수생인 말단 공무원도 돈이 된다면 그림 한 점이라도 들고 나왔으며, 매월 받는 용돈을 본국으로 송금하며 내 것도 챙기는 그들의 철저한 경제관념을 보았다. '개인이 잘 돼야 나라도 잘 된다'라고 믿고 있는 그들의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 동북아시아 전략적 요충지에 위치한 남북한 대립관계를, 자국의 이익에 최대한 활용하려는 중국, 일본, 미국 등 강대국의 틈바구니 속에서 한반도는 오늘도 긴박하게 움직이고 있다. 좋든 싫든 중국은 우리의 영원한 이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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