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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땅은 어디에?

버려야 할 욕심

by 노고지리

우리는 어릴 적부터 ‘땅따먹기’ 놀이를 하면서 땅에 대한 소유욕이 자연스레 길러졌다. 작은 돌을 손가락으로 네댓 번씩 튕겨서 선을 긋고 내 땅으로 무사히 들어오면 그만큼 넓어지는 재미에 깔깔거리며 놀았다. 돌을 욕심껏 멀리 보냈다가는 돌아오질 못해 땅을 넓힐 기회는 상대에게 넘어간다. 그 손가락 묘기가 오늘날 내 땅을 소유하고 넓히는데 다양한 방식으로 진화해 왔다.


땅이 없어 가난했던 옛 어른들은 남의 집 머슴살이도 서슴없이 했다. 1년 새경(노임) 쌀가마니를 모아 내 땅을 사는 것이 인생 최대의 목표였다. 그곳에 씨 뿌리고 가꾸며 추수하는 것이 소원이었고, 자식들 교육해 가난을 대물림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조상님들은 인생의 앞길을 땅에서 찾고자 하였다.


우리 부모님은 평생 일구셨던 한 섬지기의 땅을 다섯 형제들에게 고루 나누어 주셨다. 내 몫으로 받은 서마지기 논 말고는 단 한 평의 땅도 스스로 마련해 보질 못했다. 집을 짓고, 농사를 짓고, 아이들이 맘껏 뛰어놀 수 있는 땅은 우리 모두의 소망일 것이다. 이승을 떠나 육신이 묻힐 단 몇 평의 땅이라도 있다면 영혼까지도 행복할 것이다.


땅 한평 없는 사람은 내 땅을 가져보는 것이 평생의 소원이요, 땅을 소유한 자는 더 넓은 땅을 차지하려고 아우성이다. 권력 있고 돈 많은 부자들은 온갖 정보와 재력으로 땅 투기 열풍에 혈안이 되었다. 개발 예정지를 미리 알아 부정비리를 저지르다 쇠고랑을 찬 사람들이 있다. 과욕은 화를 부른다는 말이 맞는 말이다.


인류 문명의 역사는 땅과 함께 꽃처럼 피어오르다 시들어지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발전해왔다. 강한 나라는 넓은 땅을 차지했고 힘에서 밀리면 내 땅도 빼앗기는 역사였다. 중국, 러시아, 일본 강대국에 둘러싸인 한반도는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국으로 허리가 잘린 채 70년이 흐르고 있다. 대한민국은 6천만 명이나 되는 인구를 감안하면 땅이 좁다. 더구나 산지가 70%나 차지하고 있으니 땅의 전쟁터라 할만하다. 국토의 급속한 개발에 밀려 농지는 매년 줄었다. 1970년대 120만 정보였던 벼농사 면적이 2020년대에 70만 정보로 급격히 감소하였다. 농촌은 늙어가 일할 사람이 없으며 농자재 값이 올라 의욕이 상실됐다. 있는 농토마저 제대로 관리를 못해 잡초가 무성하고, 주인 잃은 땅엔 찬바람만 인다.


땅은 거짓이 없다. '뿌린 대로 거둔다'라고 하였다. 맛과 향과 빛깔이 좋은 수확을 기대한다면 그만큼 애정을 쏟아야 한다. 매년 수확한 만큼의 에너지원인 퇴비를 돌려주어야 하는데도 인간들은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것은 정직한 땅에 대한 배신이요 자연의 순리에 역행하는 행위이다. 화학비료와 제초제와 농약을 사용하면 땅은 죽어간다. 수많은 미생물들이 퇴비와 비료를 분해시키고 작물에게 영양분을 공급하는데 그것들이 죽어간다.


법정 스님은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는 주고받는 관계 속에서 그 생명을 유지해간다. 뿌리는 대지로부터 끊임없이 받아들이고, 그 보상으로 꽃과 열매로서 대지에 되돌려준다. 우리는 대지로부터 끊임없이 빼앗기만 하지 아무것도 되돌려주려고 하지 않는다. 이래서 대지는 서서히 불모의 땅이 되어가면서 죽어간다. 이 지구가 죽어가고 있다면 우리 안에 있는 인간의 대지도 또한 죽어간다. 왜냐하면 인간은 독립된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지구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라고 자연과 인간의 상생을 강조하셨다.


캄보디아는 대한민국과 크기가 비슷한 나라지만 인구는 우리의 1/3수준이어서 손길이 미치지 못하고 방치된 땅이 아직도 널려있다. 이런 모습을 보는 한국인들은 땅의 한을 풀어보고자 마구 사들인다. 캄보디아는 외국인에게 토지 소유를 허가하지 않기 때문에 현지인의 이름을 빌리거나 장기 임대차 제도를 활용하여 값이 싼 당을 구한다. 그러다가 막대한 개발비용을 감당 못해 큰돈을 날리거나, 현지인에게 땅을 빼앗기고 빈손으로 되돌아오는 안타까운 일도 있다.


수탈 방식의 농사는 땅의 본 모습을 잃게 한다. 앞으로 인류의 삶은 땅을 얼마나 과학적이고 생태적으로 유지시키고 관리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게 될 것이다. 공익적 기능을 인식하고 유지하면서 안정적인 생산 터전으로서 역할을 다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기후변화에 대응할 중요한 자원으로 공존해 가야 한다. 햇빛, 바람, 물, 땅이 인간과 상생하는 자연 그대로가 좋다. 이승에 잠시 머물다 한줌의 흙으로 돌아가면 그만일 것을 네땅, 내땅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지구상에 내 땅은 없다. 인류 모두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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