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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슬 작가 Sep 22. 2024

16.  새로운 시작과 두려움(두려움)

상처와 이해의 순간


  

인간관계는 결코 간단하지 않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삶의 행복이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좋은 인간관계는 삶의 질을 개선하고 행복을 향상하는 데 기여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일상 스트레스를 높이고 삶의 흐름을 방해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누구나 인간관계에서 오는 크고 작은 상처로 고통받아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나 또한 이러한 경험이 있다.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은 언제나 설렘과 함께 두려움을 동반한다. 내 마음이 상대방을 향해 일직선으로 나아가더라도, 상대방이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까 하는 불안감이 항상 존재한다. 얼굴, 생김새, 신체 조건 등 외적인 요소와 마음의 색, 마음 그릇의 크기 및 형태와 같은 내면적 특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러한 차이로 인해 사람들은 보고, 듣고, 느끼고 표현하는 방식에서도 각기 다른 관점을 형성하게 된다. 그래서 내가 상대방에게 ‘예쁘다’고 말해도, 상대방이 받아들일 때는 ‘어머, 예! 거울 좀 봐라. 지금보다는 더 예뻐져야 하지 않겠니?’라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오해로 인한 상처와 불안감은 새로운 관계를 맺는 데 있어 큰 걸림돌이 된다.     


중학생 시절의 기억이 떠오른다. 학교에 급식 문화가 도입되기 전, 매일 아침 엄마가 싸준 도시락을 가방에 담아 전철을 타고 학교로 향했다. 무거운 교과서와 도시락의 무게는 어깨를 짓눌렀고, 큰 부담이 되었다. 그러던 중, 우리 반으로 전학 온 은주라는 친구가 매일 혼자 매점에서 빵과 우유, 라면 등으로 점심을 간편하게 해결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나는 그런 은주가 부럽기도 하고 친해지고 싶은 마음에 한 마디를 건넨다. “은주야, 너는 좋겠다. 도시락을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되고, 간편하게 점심을 해결할 수 있어서.” 그러자 은주는 갑자기 굳은 표정으로 “건슬아! 네가 매일 나처럼 먹어봐. 이게 좋은 건지.”라고 퉁명스럽게 대답한다. 그 순간, 은주가 느끼는 감정의 무게를 이해하지 못한 채 나의 시선에서만 바라봤다는 사실에 아쉬움을 느끼며, 나 또한 톡 쏘아붙이는 은주의 말에 내심 상처를 받는다. 동시에 은주 역시 내 말이 상처가 됐을 거라는 생각에 몸 둘 바를 모르겠다는 마음이 든다.     

은주가 아버지를 잃고, 엄마가 바쁘게 일하는 상황에서 매일 아침 주어진 용돈으로 점심을 사 먹어야 했다는 사정을 알게 되면서, 내 생각이 짧았다는 마음에 미안함이 커진다. 나의 시선에서 느끼는 부러움이 상대방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상대방의 상황을 더 깊이 이해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학교라는 사회에서 친구들과의 관계가 단순히 편안한 우정으로 맺어진다고만 생각했던 것은 나만의 착각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도 사춘기가 처음이라 막상 겪고 있으면서도 우리들의 예민한 시기에 서로 간의 말 한마디가 얼마나 조심스러운지를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 돌이켜보면 천방지축 귀여운 중학생 소녀들이었음은 분명해 보인다. 그 시절, 친구들 사이의 사소한 다툼이나 오해가 얼마나 큰 상처가 될 수 있는지를 알지 못했던 나는, 이제 와서 그때의 나를 되돌아보면 안타깝기도 하다.  


중학생 때의 경험을 계기로, 성인이 된 지금도 새로운 인간관계를 맺는 것이 얼마나 복잡하고 어려운 일인지 잊지 않게 된다. 개인의 사정과 삶의 배경을 이해하지 못한 상황에서 내 입장에서만 바라본 것에 대한 미안함이 밀려온다. 이 경험은 나에게 새로운 인간관계의 시작을 다소 두렵게 만들었지만, 결국 더 깊이 있는 관계를 형성하기 위한 용기와 자신감을 기를 수 있게 된 기억이 다시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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