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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슬 작가 Sep 21. 2024

15. 사랑의 속도(혼란)

부담과 불안


사랑의 깊이가 항상 시간과 함께 무르익는 것은 아닐까? 한동안 '사랑해'라는 말을 듣기 싫었던 때가 있다. 사귀는 사람마다 '너도 나도 사랑해'라는 말을 쉽게 내뱉지만, 그들이 정말로 나를 사랑했는지 의문이 든다. 나조차도 연애를 했던 여러 명의 사람 중 솔직히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낀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30대 초반에 경험한 소개팅에서 만난 한 남자가 있다. 나보다 한 살이 많았던 그는 어느 한 구석 모난 곳도 없고, 지극히 평범한 남자와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처음 나의 눈에 들어온 그의 모습은 흰 피부에 선해 보이는 얼굴, 깔끔한 옷매무새,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것은 살짝 설레 보이는 듯한 미소였다.     


아무리 첫 대면이라 할지라도 요즘 같은 세상에 볼이 불그레해지는 남자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좋게 말하면 순수한 청년으로 보인다. 그런 그가 싫지 않았던 나는 약간의 호감이 느껴진다.    


그는 나에게 애프터 신청을 하였고, 우리는 그렇게 연인이 된다. 그러나 순둥순둥한 이미지와는 다르게 그는 표현에 능숙하다. '오늘부터 1일'이라며 서슴없이 '사랑해'라고 외친다. 나는 순간 멈칫한다. 그러자 그는 왜 그러냐며 의아해한다. “오빠가 나를 언제 봤다고 사랑해라는 말을 그렇게 쉽게 해?”라고 묻자 그는 당황한 기색 없이 내 볼을 꼬집으며 '앙탈쟁이'란다.


그날 이후 전화 통화나 문자의 마무리는 늘 “사랑해”라는 세 글자가 빠지지 않는다. 나는 그와의 만남이 어딘가 모르게 석연치 않다. 사랑이란 감정이 그렇게 쉽게 생기는 것인지, 아니면 너무 오래간만에 연애를 하게 돼서 기뻐서 표현을 아끼지 않는 것인지, 또는 이 사람은 사랑의 정의에 상대를 알아가는 기간 따위는 기준이 되지 않는 것인지... 나를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사랑이 이렇게 쉽게 달아오른다면 이별도 어느 순간에 폭풍처럼 다가오는 것은 아닐지... 더 중요한 것은 나는 이 남자를 아직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좋아하는 마음만 있을 뿐, 그래서 '사랑해'라는 말이 거북스럽기까지 하다. 상대의 감정을 존중해 주는 사람이라면 일방적으로 시도 때도 없이 '사랑해'라는 말로 “네가 나를 사랑하도록 만들고야 말겠어”라는 뉘앙스를 심어줄 필요는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의 사랑법이 틀렸다고 부정하지는 않는다. 각자의 사랑이란 정의가 다를 뿐이다. 이 세상에 사랑이라는 것은 꼭 이래야 한다는 법칙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서 처세술과 표현하는 방식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나는 그의 연애 스타일 그대로를 존중한다. 다만 나와는 다를 뿐이라고...     


사랑은 속도 조절이 중요하다. 각자가 살아온 환경이 다르므로 그 안에서 형성된 사랑의 가치관 또한 다를 수 있다.


이제 막 연애 초기에 있는 사람에게 '사랑해'라는 표현은 오히려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사랑은 부담이 되어서는 안 되며, 마음과 몸에서 충분히 느꼈을 때 서로에게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양방향에서 서로를 만났을 때, 진정한 사랑의 가치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사랑은 서로의 속도와 감정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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