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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슬 작가 Sep 20. 2024

14. 고독 속의 자기 발견(외로움)

나를 향한 치유


고독은 부정적인 감정만이 아니다. 고요한 분위기는 오히려 정신을 맑아지게 하여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자기 돌봄의 시간이 된다. 또한 고독은 특정한 사람에게가 아닌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나 역시도 어린 시절, 가족과의 정서적인 거리감으로 혼자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던 경험이 있다.     


하교 후, 열쇠로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조용한 집안의 고요함이 나를 맞이한다. 거실 한복판에 걸린 '가화만사성' 액자와 자명종 소리만이 존재감을 드러낸다. 주방 식탁 위에는 엄마가 남긴 "밥 잘 챙겨 먹어"라는 내용의 메모지가 놓여 있고, 밥 솥을 열어보니 엄마가 해놓으신 따뜻한 밥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온다. 부모님의 맞벌이로 집은 늘 고요하다. 저녁이 되면 부모님을 볼 수 있지만, 엄마의 포근함은 항상 그립기만 하다. 이러한 따뜻한 장면 속에서도 나는 엄마의 존재를 느끼지만, 그리움이 가시지 않는다.


막내인 나는 언니, 오빠와 나이 터울이 있어 하교 시간이 다르다. 그래서 혼자 점심이나 간식을 먹는 날이 많았고 그 때문인지 음식의 맛보다 집안의 적막함이 마음에 그림자를 새겨놓는다. "안방에는 부모님이 계셔야 할 곳인데… 작은 방에서는 언니와 오빠가 함께 웃고 떠들며 놀고 있어야 하는데…"라는 생각은 내 마음속의 환상일 뿐, 현실에서는 그 누구도 보이지 않는다. 부모님께서 하신 말씀 중, 누가 오더라도 절대 문을 열어주지 말라는 당부가 떠오른다. 현관문을 바라보며 언니와 오빠가 빨리 집에 돌아왔으면 하는 마음이 머릿속을 맴돈다.  TV를 틀어도 방 안은 여전히 고요함으로 가득 차 있고, 흥미를 끌 만한 프로그램은 찾아볼 수 없다. 언니가 즐겨 듣는 가요 테이프를 카세트에 넣고 음악을 틀어보지만, 신나는 멜로디에도 즐거움이 느껴지지 않는다. 결국 지쳐서 그대로 주저앉고 만다, '나 혼자'라는 생각에 무력감이 찾아온 것이다.


이런 반복되는 고독감에 나는 이 감정을 밀어내기보다 받아들이기로 결심한다. 백지장에 펜 하나를 올려놓고, 나 자신에게 노크를 한다. "들어와"라는 감정의 문이 열리면, 펜을 잡고 나 자신과 대화를 나눈다. 이 과정은 나를 더욱 깊이 이해하는 계기가 된다. 결국 이 시간들은 정서적으로 고립되었던 나를 밝은 빛으로 이끌어내는 가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어릴 적 가족의 정서적인 거리는 나에게 깊은 고독감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이 고독감은 나의 사색을 불러일으켰고 오감을 일깨운 고마운 감정이다. 덕분에 감각이 더욱 발달하게 되었고, 상황에 따른 나 자신과 감정의 흐름을 이해하게 되었다.


결국,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는 에너지는 감정의 심층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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