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향한 치유
하교 후, 열쇠로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조용한 집안의 고요함이 나를 맞이한다. 거실 한복판에 걸린 '가화만사성' 액자와 자명종 소리만이 존재감을 드러낸다. 주방 식탁 위에는 엄마가 남긴 "밥 잘 챙겨 먹어"라는 내용의 메모지가 놓여 있고, 밥 솥을 열어보니 엄마가 해놓으신 따뜻한 밥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온다. 부모님의 맞벌이로 집은 늘 고요하다. 저녁이 되면 부모님을 볼 수 있지만, 엄마의 포근함은 항상 그립기만 하다. 이러한 따뜻한 장면 속에서도 나는 엄마의 존재를 느끼지만, 그리움이 가시지 않는다.
막내인 나는 언니, 오빠와 나이 터울이 있어 하교 시간이 다르다. 그래서 혼자 점심이나 간식을 먹는 날이 많았고 그 때문인지 음식의 맛보다 집안의 적막함이 마음에 그림자를 새겨놓는다. "안방에는 부모님이 계셔야 할 곳인데… 작은 방에서는 언니와 오빠가 함께 웃고 떠들며 놀고 있어야 하는데…"라는 생각은 내 마음속의 환상일 뿐, 현실에서는 그 누구도 보이지 않는다. 부모님께서 하신 말씀 중, 누가 오더라도 절대 문을 열어주지 말라는 당부가 떠오른다. 현관문을 바라보며 언니와 오빠가 빨리 집에 돌아왔으면 하는 마음이 머릿속을 맴돈다. TV를 틀어도 방 안은 여전히 고요함으로 가득 차 있고, 흥미를 끌 만한 프로그램은 찾아볼 수 없다. 언니가 즐겨 듣는 가요 테이프를 카세트에 넣고 음악을 틀어보지만, 신나는 멜로디에도 즐거움이 느껴지지 않는다. 결국 지쳐서 그대로 주저앉고 만다, '나 혼자'라는 생각에 무력감이 찾아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