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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TI 싫어

by 용간

라시도에게


아빠는 말이야, MBTI가 너무 싫어.


MBTI는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만든 스케일이 아니야. 아빠가 사람에 대한 연구를 하기 때문에 좀 더 예민하고 면밀히 보는 걸 수도 있지만, MBTI의 분류와 측정값이 유의미하려면 두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해.


우선 사람의 고유한 특성을 측정하려는 거면, 같은 사람이 여러 번 측정했을 때 비슷하게 나와야 하는데, MBTI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아. 그걸 신뢰성이 떨어진다고 해.


MBTI는 사람의 직업 적합성을 측정하기 위해 산업적인 용도로 만들어진 것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의 직업 성과를 예측하는데 크게 도움 되지 않아. 쓸모가 별로 없다는 거지.


MBTI가 쓸모 있는 상황은 사람들을 분류하는 거야. 너는 애와 서로 비슷하고, 쟤완 서로 다르다.


MBTI가 어떤 이들이 서로 비슷함을 찾고 싶을 때 사용된다면 가치가 있을지 몰라. 그런데, 서로가 다르고 나와 남을 구분하는 데 사용된다면, 정말 나쁘게 사용되는 거야. 실제로 다르지 않은 사람들을 다르다고 하게 하거든.


잘 알려진 MBTI의 문제 중 하나는 사람을 양극단의 한쪽으로 분류하도록 강제하는 것이야. 대부분의 사람들은 중간쯤에 위치해 있거든. 상황에 따라, 경험에 따라, I 이기도 하고, E 이기도 할 수 있어. 그런 의미에서 주변에 MBTI가 계속 똑같이 나온다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사실 더 예외적인 거야.


이런 지루한 얘기를 차치하고서도, 아빠는 왜 MBTI를 싫어할까?


요즘 세상을 보면 사람들이 너무 양극화되어 가는 것 같아.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도 양극화가 심하지만 정치적으로도 양극화가 정말 심해졌어. 너 우리 편이야? 아니면 쟤네 편이야? 중간자들은 계속 한쪽 선택하기를 강요받아. MBTI 때문에 이제는 자기의 성향에 대해서도 그렇게 강요받기 시작했어. 넌 T야? 넌 F야?


아빤 E이자 I이고, T이자 F야. S이자 N이고, J이자 P야. 모두에게 속하지만 아무에게도 속하지 않은.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데, 귀찮으니까 한 가지 정해서 자기가 INFP이니 뭐니 믿고 있는 거거든. 아빠는 좀 유별나서 그냥 한 가지로 정해지기를 거부하는 거고.


아빤 너희도 그랬으면 좋겠어. 남들이 너희는 누구 편이냐고 강요할 때, 어디도 아니라고 할 수 있고. 스스로도 남들을 한 가지의 타입으로 몰아넣어서 생각하지 않고.


중간자의 삶이 피곤하긴 하지. 하지만, 양극화가 심해지는 시대에 꼭 필요한 사람인 것 같아. 사람들을 구별하고 나누는 사람이 아니라, 어떻게든 공통점을 찾고 포용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해.


그래서 너희를 한 가지 MBTI의 타입으로 몰아넣지 말고, 남들을 그렇게 몰아넣지도 말고.


너희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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