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시도에게
할머니는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신 분이야. 9살에 아버지를 여의셨어. 작은 돈이라도 벌려고 시장에 야채 팔러 나가신 어머니를 대신해서 동생 셋을 돌보아야 했어. 놀기 좋아하고, 친구들 좋아하는 할머니는, 어렸을 때 동생들을 돌보아야 해서 집에서 못 나오던 것이 너무 싫었대.
할머니는 명석하신 분이란다. 운동도 잘 하시고. 학업에서도 우수한 성적을 올리셨나 봐.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머리 좋은 할머니가 교육을 못 받을까 친척 분들이 많이 도와주셨대. 그래서 나름 좋은 여자고등학교에 진학하셨어.
그 중에서도 공부를 못 하지 않으셨나 봐. 하지만 할머니는 빨리 돈을 벌어야 했어. 그래서 다른 친구들이 서울대, 이대를 갈 때, 할머니는 교대를 가셨대. 지금이야 4년제의 좋은 학교이지만, 그땐 전문대학이었고, 원치 않은 진학으로 마음이 힘드셨나 봐.
할아버지가 미국으로 유학을 간 뒤에 할머니를 초대했을 때, 할머니는 결혼도 안 한 이 남자를 믿고, 미국으로 가셨어. 그곳에서 부모님도 없이 결혼식을 올리고, 신혼을 시작하시며, 석사 공부를 하셨어. 할아버지 공부가 끝나고 한국에 같이 돌아간 뒤에 할머니는 우여곡절 끝에 할아버지와 큰아빠를 뒤에 두고, 다시 태평양을 건너 미국으로 박사공부를 하러 왔어.
할머니에게 박사공부는 어려움의 연속이었어. 멀리 떨어져 있는 자식, 벌어야 할 학비와 생활비, 그리고 어려운 언어 등의 이유로. 할머니는 방학 때 공장에서도 일하고, 꾸역꾸역 공부를 하셨어. 아들이 보고 싶었을 텐데도. 그 때는 한국에 전화 한 번 하는 것도 어려웠거든. 할머니에겐 박사과정을 졸업하는 것 자체가 어려움이고, 큰 도전이었어.
50년 뒤, 할머니는 기억력이 많이 약해지셨지만, 감사함은 항상 품고 계시단다. 박사 졸업이 걱정이던 그 경험, 미국에서 교수로 취업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하던 할머니한테 아들이 미국에서 교수로, 정년보장도 받고 사는 것은 놀라운 일이지. 물론 그렇다고 잔소리가 없는 건 아니란다. 할머니는 항상 모든 상황에서 좀 더 나아져야 살아남을 수 있던 사람이었으니까.
오늘은 우리 가족이 어디서 왔는가를 돌아보며 감사함을 묵상하려고 해.
이 모든 것이 할머니의 의지와 능력으로만 이루어졌을까? 그렇진 않을 거야. 주변에서 많이 도와주셨어.
아빠 가족이 온 길을 돌아보니 먼 길이구나. 성공도 있었지만, 또 그 사이에 실패와 어려움도 있는. 어쩌다 미국, 텍사스 시골까지 오게 되었네.
아빠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도 모르겠다. 하나하나의 선택엔 이유가 있었는데, 어릴 때 꾸던 꿈이 아니었던 길을 가고 있어.
그 와중에 너희도 만났고.
감사하다. 이 힘으로 아빠도 내일 더 힘을 내어보려고 해.
너희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