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시도에게
우리 집은 항상 다른 사람들이 있었어. 지금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이기도 한 거 같아.
할머니는 어렵게 자랐어. 50년대 중반인 9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세 동생들이 있었으니, 상상이 가지? 그래서 어머니는 다른 친척들 집에 더 드나들었던 것 같아. 할머니의 엄마는 시장에 나가서 뭐라도 하셔야 했을 테니까.
큰 가족, 나누는 정. 다들 여유가 없으니, 조금이라도 다 같이 조금 씩이라도 모아서 서로 의지하는. 그게 한국의 일반적인 모습이었단다. 좋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나라가 발전하고, 살기 쉬워지면서 그런 모습은 없어졌지. 삼촌, 사촌들은 차지하고, 형제자매 간에도 왕래가 없는 경우가 더 많지. 어쩌면 찾아갈 형제자매도 없는 것이 문제인지도 몰라. 다들 한 두 명만 낳는 시대가 되었으니.
아빠네 집에는 항상 차 있었어. 아빠의 할아버지와 같이 살았어. 그땐 할아버지 간병인이랑 그 가족도 우리랑 같이 살았거든. 너희 증조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에는 아빠의 외할머니랑 살았지. 그때, 아빠의 외사촌들이 우리 집에 자주 왔어. 한 때, 아빠는 근처에 사는 작은 이모네 가서 방과 후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 막내 사촌 동생이 재수할 때 우리 집에서 같이 살았어. 학원이 더 가깝게 있었거든.
더 큰 뒤로는 가족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랑도 살았지. 할머니 친구분의 동생 분이 어려운 상황에 쳐했을 때 우리 집에서 몇 년을 같이 살았어. 할아버지 친구분의 아들도 인생의 난관을 만났을 때, 내가 떠난 내 방에서 한 두 해 살았고. 한 반년은 큰 아빠 친구의 아들인 한 영국 친구가 우리랑 같이 살았지.
아빠네는 그렇게 항상 좀 북적였던 거 같아. 이렇게 이야기하면 너희 할머니가 무슨 서글서글한 주막 아줌마 같이 보일 수 있을 거야. 너희가 알다시피 할머닌 그런 사람은 아니었거든. 그 영국 친구가 집에 먹을 게 없어서 나랑 같이 계란 삶아 먹던 게 생각나네. 그 친구 덕에 영국인 먹는 하프 보일드 에그를 먹어봤어.
아빠네 집에 손님이 자주 오는 건 그런 이유도 있을 거야. 손님이 오면 최고로 대해줘야겠다는 생각도 안 한단다. 대신 손님이 부담 없이 그냥 편하게 있다가 가도 돼.
엄마가 힘들었을 거야. 그래도 얼마 전에 너희가 아빠에게 손님들이 오는 게 좋다고 이야기해 줘서 고맙단다. 너희가 그렇게 컸으면 좋겠어.
좁은 핵가족 사이에서 사는 게 아니라, 큰 공동체 안에서.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사도행전 2:44-46 KRV
너희 아빠가